SF의 색다른 매력… 장르가 된 서정성[정보라의 이 책 환상적이야]|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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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속 인간 경험에 초점

SF의 문학적 가치 돋보이게 해

◇17일의 돌핀/한요나 지음/256쪽·1만4000원·앤드

정보라 소설가

흔히 시는 서정적, 산문은 서사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서양 문학에서 가장 오래된 서사 장르는 산문이 아니라 시의 형식을 띤 서사시(epic)였다. 반드시 운율이라는 외적 형식을 띠어야만 인간의 감정 상태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편소설집 ‘17일의 돌핀’에서 한요나 작가는 서사만큼이나 서정에 초점을 두고 있다. 표제작 ‘17일의 돌핀’은 17일에 한 번씩 수송선을 운항하는 화자와 역사음악을 전공한 ‘진’이 악기를 수송하면서 과거 지구의 문화와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는 이야기이다.

지구인은 외계 행성에서 살아가며 행성 표면에서 일어나는 폭발을 관리하고 물자를 수송하는 등 생존을 위해 기계와 기술에 의존한다. 기계를 운행하는 인간은 자신이 조작하는 기계를 우선시하고 자극에 대한 신체적, 감정적 반응을 최소화해야 한다. 주인공의 세계에서 음악을 듣는 것처럼 정서적인 자극을 일부러 불러일으키는 행동은 “뒤로 가는 사람들”, 즉 과거 회귀적인 소수의 사람들만이 몰래 즐기는 특이하고 “무식한” 행위이다. 보통 미래 디스토피아에서는 정서적 반응을 스스로 부정하게 만드는 억압적인 사회 구조에 초점을 맞추게 마련이다. 그러나 한 작가는 주인공이 음악을 찾아서 듣고 과거의 문화를 공부하며 정서적인 반응과 인간적인 경험을 점점 더 깊이 발견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다른 작품도 마찬가지다. ‘바닷가의 모리유’는 지구에 출몰하는 외계 존재에 대항해서 전투 로봇을 몰고 나가 싸우는 파일럿의 이야기이다. 마치 ‘태권 브이’ 같은 설정인데 스릴 넘치는 전투 장면 묘사는 나오지 않는다. 이야기의 중심은 자기 로봇에 애착을 가지고 로봇과 더 잘 일체화되기 위해 고민하고 전투 중에 로봇이 파괴되면 애도하는 파일럿의 정서적 상태다.

“하지만 20%의 잔해만 남은 마하를 끌고 들어온 현장조사관들의 표정을 보는 순간 나는 무너져 우는 수밖에 없었다. 언니가 등을 쓸어 주었다.”(‘바닷가의 모리유’ 중)

주인공에게 로봇은 자신을 태우고 함께 싸우는 동지다. 또 인용문의 ‘언니’라는 호칭에서 보이듯이 주인공이 동료 파일럿과 관계 맺는 방식은 동지애, 자매애, 그리고 라이벌 의식과 성애적인 로맨틱함이 섞여 복잡다단하고 입체적이다. ‘바닷가의 모리유’는 내가 이제까지 접한 로봇전투물 중에서 가장 독특한 작품이었다.

한 작가의 꿈은 공상과학(SF) 시를 쓰는 것이라고 한다. 미국에는 실제로 1978년에 설립되어 46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SF 시 협회가 있다. 그러니까 과학기술적인 심상과 이에 대한 인간의 정서적 반응을 서정적으로 풀어내는 창작 기법은 외국에서는 이미 장르로서 자리 잡은 셈이다. 사실 과학기술의 발전과 그에 따른 미래 예측은 작가보다 과학자가 더 잘할 수 있다. 반면 세상과 여전히 관계 맺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의 정서적인 반응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야말로 SF가 문학 장르로서, 문화의 일부로서 ‘인간성’을 유지하는 가장 창의적인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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