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시대 갔지만… ‘난장이’는 여전히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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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46년 만에 판매부수 150만부 대기록

지옥 같은 도시 빈민들의 삶
거악에 폭력적으로 맞서려다
피해자가 가해자 되는 모순
“난쏘공 필요없는 시대 바라”
작가 외쳤지만 여전한 현실

1978년 첫 출간되자마자
대중·평단서 동시에 호평
2024년 2월 무려 325쇄 넘어서
이달 출판사서 개정판 출간
“문학·사회적 가치 증명한 셈”

어느 날, 아파트 단지로 재개발을 앞둔 철거민 집에서 따뜻한 밥과 국이 올라간 밥상을 앞에 두고 세입자 가족과 삼십대 남성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세입자 가족은 집이 헐리면 당장 거리에 나앉아야 하는 이들이었고, 남성은 잡지사 직원으로 취재 중이었다. 갑자기 대문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남성의 가슴은 요동쳤다. 철거반원들이 철퇴를 휘두르며 대문과 시멘트 담을 쳐부수기 시작했다. 대문과 담은 순식간에 무너졌고, 철거반원들이 집 안으로 들이닥쳤다.

젊은 남성은 이날 취재를 나왔음에도 철거반원들과 멱살을 잡고 싸우지 않을 수 없었다. 싸움이 끝나고 발길을 돌리는 순간, 처음에는 슬펐고 나중에는 화가 났다. 난장이들의 처지도 안타까웠지만 악이 선으로 전도되는 현실은 더욱 참을 수 없었다. “그때 제일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악이 내놓고 선을 가장하는 것이었다. 악이 자선이 되고 희망이 되고 진실이 되고 또 정의가 되었다.”

조세희의 연작 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특별한 이벤트 없이 46년 만에 150만부가 팔려 화제가 되고 있다. 작품은 1970년대 한 도시빈민 가족의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그 이야기를 고통스럽게 전하는 작가의 분노와 부끄러움의 이야기라는 평가가 나온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내가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건 그래, 글을 쓰는 거야. 잡지사로 돌아오는 길에 회사 부근 문방구에 들러서 모나미 볼펜 한 자루와 작은 노트 한 권을 사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바로 2022년 작고한 소설가 조세희였다. 신문사 신춘문예로 등단했지만 아직 작품 활동을 하지 않던 때였다. 훌륭한 작가가 아닌,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의무를 다하리라. 그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유신헌법’ 아래서 나는 일찍이 포기했던 소설을 한 편 한 편 써 나갔다.”

책은 판매 금지되면 안 된다, 꼭 소수의 독자에게라도 전파돼야 한다. 인간의 기본권이 말살된 ‘칼의 시대’에 작은 ‘펜’으로 작은 노트에 글을 쓰면서 그는 생각했다. 비록 작품은 작은 덩어리에 불과하겠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파괴를 견디고’ 따뜻한 사랑과 고통받는 피의 이야기로 살아 독자들에게 전달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1975년 ‘칼날’을 시작으로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이르기까지 철거당한 도시 빈민의 삶을 그린 연작을 차례로 발표했다. 조세희의 ‘난장이 연작’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라도 천국을 생각해 보지 않은 날이 없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연작집의 표제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낙원구 행복동 무허가 주택에 사는 난장이 가족 이야기다. 난장이 가족은 노비의 후손으로 키 117㎝, 몸무게 32㎏에 불과한 난장이 김불이와 아내, 아들 영수와 영호, 딸 영희 다섯 명으로 구성됐다. 어느 날, 난장이 가족은 아파트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된 뒤 철거 계고장을 받게 된다. 아버지가 더 이상 일할 수 없게 되자 영수와 영호는 인쇄공장에 나가기도 한다.

 

가족은 투기업자에게 입주권을 팔지만 제 몫으로 돌아오는 것은 거의 없었다. 집이 철거당한 뒤, 거리에 나앉을 처지로 내몰린다. 투기업자를 따라 가출했던 영희는 업자의 금고 안에서 입주권을 되찾아 오지만, 아버지가 공장 굴뚝에서 죽은 채로 발견됐다는 소식에 절규한다.

“아아아아아아아 하는 울음이 느리게 나의 목을 타고 올라왔다. ‘울지 마, 영희야.’ 큰오빠가 말했었다. ‘제발 울지 마. 누가 듣겠어.’ 나는 울음을 그칠 수 없었다. ‘큰오빠는 화도 안 나?’ ‘그치라니까.’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부르는 악당은 죽여 버려.’ ‘그래. 죽여 버릴게.’ ‘꼭 죽여.’ ‘그래. 꼭.’ ‘꼭.’”

조세희는 열두 편으로 연작을 마무리 짓고 1978년 연작 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난쏘공)을 펴냈다.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동시에 지지를 받아 온 연작소설 ‘난쏘공’이 최근 판매부수 150만부를 돌파했다. 1996년 100쇄, 2005년 200쇄, 2017년 300쇄를 기록한 끝에 올해 2월 325쇄를 찍었다. 무려 46년 만이다.

문학과지성사에 이어 2000년부터 소설집을 출간해 온 출판사 이성과힘은 이달 판형과 표지를 새로이 하고 현대 표기법에 맞게 일부 단어와 문장을 수정한 개정판(사진)을 새롭게 출간했다. 출판사는 광고나 TV프로그램의 캠페인 없이 이룬 성취라는 점에서 “문학적·사회적 가치를 증명하는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연작집을 여는 단편 ‘뫼비우스의 띠’는 일종의 액자소설로, 한 수학 교사가 한 해 마지막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시작한다. 굴뚝 청소를 마친 깨끗한 얼굴의 아이와 더러운 아이 중에서 누가 더 먼저 씻을까 라고. 교사는 학생들의 상식적 대답의 허점을 지적한 뒤 뫼비우스 띠 이야기를 꺼낸다. 액자 속에는 헐값에 입주권을 팔았다가 속은 꼽추와 앉은뱅이의 복수 이야기가 펼쳐진다.

소설집에는 중년 여성 신애의 눈에 비치는 세상을 그린 ‘칼날’을 비롯해, 난장이 가족의 삶과 젊은이들을 대비한 ‘우주 여행’, 공장에 취직하지만 여전히 빈민굴에 살아야 하는 난장이 가족을 그린 ‘은강 노동 가족의 생계비’, 공장 노사 협상 장면이 펼쳐지는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등이 담겼다.

연작집을 닫는 작품인 ‘에필로그’ 역시 도입작 ‘뫼비우스의 띠’와 대구를 이루면서 액자식으로 전개된다. 수학 교사는 수학 성적이 떨어진 책임을 지고 윤리 과목을 맡게 됐다고 알린다. 액자 속에는 약장수를 따라나섰다가 이용만 당하고 버림받은 꼽추와 앉은뱅이가 사장을 찾아 복수하려 나서지만 영수가 죽어 나왔다는 감옥을 발견하고 포기하는 이야기가 담겼다. 교사는 좋은 글 못 쓰고 울기만 한 자신을 이해해 달라며 아직 알려지지 않은 작은 혹성으로 우주여행을 떠나기로 했다는 말을 남기고 교실을 나선다.


소설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자본과, 파렴치한 악덕업자와, 권력의 부도덕과,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아울러 거악에 잔혹하고 폭력적인 복수로 맞서려다가 뫼비우스 띠처럼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가 되는, 가해와 피해를 구별할 수 없게 되는 모순 역시 서늘하게 묘파한다. 소설이 그린 모순이 아직도 건재하다는 점에서, “더 이상 난쏘공이 필요하지 않은 시대가 왔으면 한다”(1996년)는 작가의 고민이 읽히기도.

1942년 경기 가평에서 태어난 조세희는 196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돛대 없는 장선’으로 등단했다. 십 년 넘도록 활동을 하지 않다가 1975년 ‘난쏘공 연작’의 하나인 ‘칼날’을 발표하며 활동을 재개한 그는 ‘난쏘공’ 이후 소설집 ‘시간여행’과 사진 산문집 ‘침묵의 뿌리’ 등을 펴냈다. 동인문학상과 이상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지금은 난장이일지라도 결코 절망이나 냉소에 빠지지 말라고 격려한 소설가 조세희, 마지막까지 부조리한 자본과 권력에 맞서 싸우라고 외쳤던 인간 조세희. 2022년 또 하나의 별이 된 그는, ‘난쏘공’의 연작소설 ‘에필로그’에서 수학 교사의 입을 빌려서 작가의 운명을 우리에게 예고했는지 모른다. 마치 유언처럼. 예언처럼.

“서쪽 하늘이 환해지며 불꽃이 하늘로 치솟으면, 내가 우주인과 함께 혹성으로 떠난 것으로 믿어 달라. 긴 설명은 있을 수가 없다. 내가 아직 알 수 없는 것은 떠나는 순간에 무엇을 대하게 될까 하는 것뿐이다. 무엇일까? 공동묘지와 같은 침묵일까? 아닐까? 외치는 것은 언제나 죽은 사람들뿐인가? 시간이 다 되었다. 지구에 살든, 혹성에 살든, 우리의 정신은 언제나 자유이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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