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성의 시네마 크리티크] 안개와 어둠이 찾아올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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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네이버 영화

<일 부코>의 시각적 즐거움은 느린 움직임과 긴 호흡의 카메라가 멀리서 바라보는 대상의 아름다움에 기인한다. 그것은 자연 풍경의 사실적인 이미지가 전달하는 관능적인 아름다움이면서, 영화의 초반부에 마을 장면에서 보이듯이, 동굴 탐험대를 따라가면서 넓은 쇼트로 시골의 풍경을 한 번에 담아내는 장면 연출이 전달하는 즐거움이기도 하다.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탐험대를 비추면서 동시에 그것을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 지붕 위를 돌아다니는 고양이와 새들을 따라 눈을 쉴 새 없이 움직이게 만드는 미장센의 아름다움이다.

인간과 동물, 건물과 그곳에서 나오는 빛과 연기로 가득한 마을을 지나 탐험대가 동굴에 도착했을 때 영화는 점점 더 이미지를 단순화한다. 기차와 등대 또는 텔레비전과 거기서 송출되고 있는 도시와 고층 건물의 복잡하고 산만한 대상에서 벗어나 넓은 평야를 비추는 구름의 그림자와 햇볕의 대비만이 남아있게 한다. 탐험대가 동굴로 들어가면 그러한 시각적 구성은 더욱 단순해져 빛과 어둠만이 남게 된다. 어두운 동굴 안을 비추는 랜턴 불빛과 미지의 공간을 향해 던져지는 불붙은 잡지에서 발광하는 불꽃의 명멸만이 스크린 안을 가득 채운다.

 

출처: 네이버 영화
출처: 네이버 영화

이러한 미니멀한 이미지의 아름다움만큼이나 <일 부코>를 구성하는 이야기 구조 또한 단순하다. 동굴을 조사하는 탐험대의 이야기와 그 자연 위에서 살아가고 있던 한 노인의 죽음을 교차하며 세계를 탐험하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와 그저 그러한 세계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인간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영화가 구성하는 시각적 이미지의 단순하지만 강렬한 아름다움에 비한다면 이야기의 구조가 드러내는 전략은 명료한 대신 소박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예컨대 노인의 세계와 탐험가들의 세계를 잇는 영화의 방식은, 노인이 산 중턱에 앉아 어딘가를 바라보는 쇼트가 있고 거기에 붙은 탐험가들을 비추는 쇼트를 통해 노인의 시점인 듯 연출하거나, 노인을 촬영할 때 바스트, 클로즈업, 익스트림 클로즈업과 같은 인물에 가까이 다가간 쇼트를 사용하면서 탐험가를 비출 때는 멀리서 바라보듯 롱 쇼트 위주로 촬영하여 두 세계 사이의 대비를 드러낸다. 목동이라는 중심인물이 있는 주관적 세계와 중심인물이 없이 탐험이, 동굴이, 동굴 전체를 그린 지도가 중심인 객관적 세계를 시각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또는 반대로 생사를 헤매는 노인의 벌어진 입은 동굴의 입 모양 같고, 그의 눈을 비추는 랜턴 빛은 바로 이어지는 동굴 쇼트에 랜턴 빛과 이어진다. 완전히 다른 세계인 개별자와 동굴이 마치 구멍을 통해 이어진 무언가인 듯 느껴지게 만든다.

 

출처: 네이버 화
출처: 네이버 영화

단순하면서 모호한 영화의 전체적인 전략에 비하면 이러한 연출은 다소 직접적이고 유치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렇지만 오두막에 난 창과 문이 모두 닫히고 건물 안에 어둠이 드리우면 우리는 그러한 생각을 잊고 죽음에 관해 생각하게 된다. 시골 마을에 사람들이 텔레비전이라는 창을 통해 바라보았던 다른 세상, 그 프로그램 안에서 건물 밖에서 크레인을 타고 올라가며 보았던 창 안쪽 사람들의 모습처럼 이쪽과 저쪽, 나와 세계를 잇는 창과 문이 닫히고 빛이 들지 않는 어둠만이 남아있게 되는 것이다. 이제 개별자인 나와 세계는 이쪽과 저쪽으로 구분되지 않는 무언가가 된다.

<일 부코>의 핵심적 감흥과 아름다움은 자연 풍광의 관능성이나 살아 움직이는 인간과 동물의 생동감 있는 이미지가 사라질 때 찾아온다. 창과 문이 닫히듯 영화의 엔딩에서 거대한 안개가 우리의 시야를 가릴 때, 이야기가 끝나고 극장에 어둠이 찾아올 때 나타난다. 다큐처럼 사실적으로 보이던 시각-이미지는 죽은 노인이 생전에 불렀던 목동의 외침이 안개와 함께 몰려오며 비로소 이 모든 게 허구적 세계임을 드러낸다. 스크린을 비추는 빛이 만들어 낸 환영인 영화만이 아니라 그것을 보고 있는 다른 세계의 나 또한 그러하다고 말이다.

 

출처: 네이버 영화
출처: 네이버 영화

다시 영화의 오프닝 장면을 떠올려 보자, 텔레비전을 보기 위해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사람들이 있고, 곧이어 텔레비전 속 영상이 등장한다. 영상 속 인물은 당시 이탈리아에서 가장 높았던 건물을 오르며 이렇게 말한다. “전에 뉴욕에서, 창문 닦는 사람이 노래를 부르더군요. 왜 노래하냐고 물으니 창문 안쪽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는 게 좋대요. 본인도 일하는 중이면서요. 저도 일하는 중이죠. 제가 하는 일은 여러분이 같은 감정을 느끼도록 하는 거예요. 집에서 시청하는 여러분들도 저처럼 느끼도록 말이죠.” 그리고 ‘일 부코’라는 제목이 떠오른다. 창밖과 안은 다른 듯 같고, 스크린 안에서 느끼는 것을 밖에서 같이 느끼도록 만들 것이라는 선언과 함께 영화가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는 동굴을 뜻하면서 구멍을 뜻하기도 하는 제목처럼, 동굴 지도를 완성한 탐험의 끝과 한 인간의 죽음을 이으며 개별자와 세계 혹은 현실과 비현실의 틈새, 갈라진 금, 균열을 만들어 우리를 비춘다. 그러면 동굴과 같은 어둠 위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며 올라오는 엔딩 크레딧을 바라보며 스크린 저편에 있는 것과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된다. 두 세계와 그것을 잇는 창과 구멍 그리고 사실적인 이미지 끝에 나타나는 비현실적인 이미지의 단순함과 소박함만으로 만든 귀한 감흥이다.

글·정우성

2021년 영평상 신인평론상을 받았다. 현재 예술강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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