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미녀는 왜 이 꼴로?” 배위 사망 미스터리, 아무도 몰랐던 사연[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편]”- 헤럴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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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편 93.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동행하는 작품>
샬롯의 여인
성 에우랄리아
에코와 나르키소스

편집자 주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본 뒤 관련 책과 영화를 모두 찾아봤습니다. 잘 그린 건 알겠는데 이 그림이 왜 유명한지 궁금했습니다. 그림 한 장에 얽힌 이야기가 그렇게 많은지 몰랐습니다. 즐거웠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졌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이 경험을 나누고자 글을 씁니다. 미술사에서 가장 논란이 된 작품, 그래서 가장 혁신적인 작품, 결국에는 가장 유명해진 작품들을 함께 살펴봅니다. 기사는 역사적 사실 기반에 일부 상상력을 더한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쓰였습니다.

샬롯의 여인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샬롯의 여인'(일부 확대)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일레인은 노래를 불렀다.

그건 어릴 적 어머니가 들려준 사랑 노래였다. 그녀는 음에 맞춰 몸을 가볍게 움직였다. 사랑한다, 보고 싶다는 식의 가사를 가만히 곱씹었다. 그러다 보면 이 갑갑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다. ‘너는 네 눈으로 바깥세상을 보면 죽으리라.’ 일레인은 수년 전에 걸린 신의 저주를 잊지 못했다. 그녀가 잘못한 건 없었다. 그저 신이 질투할 만큼 예뻐지고 있다는 게 죄라면 죄였다. 일레인은 신의 음성을 들은 그날 이후 지금껏 햇빛을 보지 못했다. 아서왕이 사는 성(城) 카멜롯 근처의 샬롯섬 탑에 갇혀있었다.

일레인은 이곳에서 홀로 천을 짜며 살았다.

물밀듯 답답함이 밀려오면 노래를 불렀고, 파도치듯 사무침이 요동치면 벽에 걸린 거울을 들여다봤다. 거울 귀퉁이로 비치는 밖을 엿보며 눈물을 뚝뚝 흘리곤 했다. 그녀는 평생 이러기만 하다 생을 끝낼 운명이었다. 그녀를 시기한 신이 바란 게 바로 그것이었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일레인은 거울을 통해 밖을 훔쳐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는 그간 본 적 없던 장면이 비치고 있었다. 원탁의 기사(Knights of the Round Table) 랜슬롯이 말을 타고 지나가는 모습이었다. 이렇게 잘생긴 사내는 처음이었다. 이토록 늠름한 기사 또한 처음이었다. 일레인은 밑도 끝도 없이 사랑에 빠졌다. 휘몰아치는 이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녀는 그를 볼 수 있는 찰나의 순간을 붙잡고 싶었다. 하지만 거울 속 그의 모습은, 어딘가 빨려들어가듯 서서히 사라질 뿐이었다. 일레인은 죽을 용기가 있어서 일어선 것이 아니었다. 저 사람을 평생 가슴에만 묻고 살 용기가 없어서 일어선 것이었다. 그녀는 기어코 창문을 향해 다섯 발짝을 걸었다. 두 눈으로 창밖 랜슬롯을 봐버렸다. 그가 아서왕의 성이 있는 언덕을 넘을 때까지 지긋이 바라보고 말았다.

휴….

일레인은 길게 한숨을 쉬며 돌아섰다. 그 순간, 느닷없이 거울이 깨졌다. ‘…네 눈으로 바깥세상을 보면 죽으리라.’ 일레인은 뒤늦게 신의 저주를 떠올렸다. 신의 명령을 받은 사신이 낫을 든 채 다가오고 있음이 분명했다. 일레인은 어차피 죽을 처지였다. 그렇다면 랜슬롯을 한 번만 더 보고 싶었다. 그녀는 서둘러 탑에서 빠져나왔다. 작은 배를 찾아 그 위에 올랐다. 샬롯의 여인, 샬롯의 여인…. 그녀는 뱃머리에 이 글자를 다급히 새겼다. 쇠사슬이 풀린 배는 랜슬롯이 있을 그 성을 향해 물살을 갈랐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샬롯의 여인’, 1888, 캔버스에 유채, 153x200cm, 테이트브리튼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샬롯의 여인'(일부 확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샬롯의 여인'(일부 확대)

영국 화가 윌리엄 워터하우스(John William Waterhouse, 1849~1917)가 이 장면을 화폭에 옮겼다.

깊은 두 눈과 빨간 입술, 매혹적인 붉은 머리와 눈꽃처럼 새하얀 옷을 입은 일레인은 과연 신이 그 미모를 질투할만해 보인다. 초조한 표정의 일레인은 배에 걸려있던 쇠사슬을 말고삐처럼 쥐고 있다. 큼직한 태피스트리는 그녀가 얼마나 긴 시간 갇혀 있었는지를 알려준다. 그녀의 급박한 마음은 그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뱃머리에는 희미한 빛이 담긴 랜턴이 걸려있다. 그 옆에는 못 박힌 채 눕혀진 예수가 있고, 마지막 불까지 꺼질 듯한 초 세 개가 놓여있다. 모두 그녀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저무는 해, 우중충한 숲과 강, 물 위를 떠다니는 낙엽 또한 처연한 분위기를 더한다. 제목은 〈샬롯의 여인〉이었다.

사랑한다, 보고 싶다….

일레인은 배 위에서 어릴 적 어머니가 가르쳐준 노래를 다시 불렀다. 그렇게 해 이 두려운 현실을 잊고자 했다. 일레인은 죽기 전 랜슬롯을 한 번 더 볼 수 있었을까.

테니슨의 문장

조지 프레데릭 와츠, ‘알프레드 테니슨 초상화’

영국 계관시인(桂冠詩人·왕 또는 국가에 공식 임명장을 받은 시인) 알프레드 테니슨(Alfred Tennyson·1809~1892)은 1832년에 시 〈샬롯의 여인〉을 발표했다.

워터하우스가 같은 제목의 그림을 그리기 50여년 전이었다. 테니슨은 아서왕 전설의 한 단락에 영감을 얻었다. 원래 전설에 따르면 일레인의 이야기는 그녀가 마상 시합에 출전한 랜슬롯을 우연히 보면서 시작된다. 첫눈에 반한 일레인은 시합 중 다친 랜슬롯을 극진히 간호한다. 일레인은 다 나은 랜슬롯에게 마음을 고백하지만, 앞서 다른 이에게 사랑을 맹세했던 랜슬롯은 이를 거절한다. 일레인은 상심에 빠진다. 상사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던 그녀는 끝내 죽고 만다. “내 한 손에는 백합, 한 손에는 편지를 쥐여주세요. 랜슬롯이 있는 성에 갈 수 있도록, 내 시신을 배 위에 띄워주세요.” 그녀의 유언이었다.

테니슨은 이 전설에 극적인 요소를 더했다.

일레인이 너무 예뻐 신의 미움을 샀다거나, 밖을 볼 수 없는 저주에 걸린 그녀가 사랑을 위해 목숨 걸고 배에 올랐다는 설정 등은 그가 덧씌운 것이었다. 테니슨은 이를 시로 쓰고 노래했다. “희미하게 펼쳐진 넓은 수면 저편을 / 무아지경에 빠진 어떤 용감한 예지자처럼 / 그 자신의 모든 불행을 바라보면서 / 유리처럼 무표정한 안색으로 / 그녀는 카멜롯을 보았다네 / 그리고 날이 저물 때 / 그녀는 사슬을 풀고 누워버렸네 / 드넓은 물줄기는 그녀를 멀리 실어 갔네 / 샬롯의 아가씨를.” 이처럼 테니슨의 문장으로 재탄생한 일레인과 랜슬롯 사이 사연은 더욱 눈물겹고 절절해졌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랜슬롯을 찾아나서는 샬롯의 여인’, 1894, 캔버스에 유채, 142.2×86.3cm, 리즈 미술관

테니슨 예찬론자였던 워터하우스는 그의 이러한 시를 두고 〈샬롯의 여인〉을 그린 것이었다.

테니슨의 글에 깊이 감동한 워터하우스는 그림 한 점을 갖고선 그 여운을 떨칠 수 없었다. 워터하우스는 〈샬롯의 여인〉을 그리고 6년 후 〈랜슬롯을 찾아나서는 샬롯의 여인〉을 또 그렸다. 그림 속 일레인은 이미 죽음을 각오한 표정이다. 거미줄처럼 얽힌 실도 그녀의 결심을 막지 못한다. 그런 일레인 뒤로는 갑옷 차림의 기사가 보이는데, 그가 아마 랜슬롯일 것이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샬롯의 여인은 ‘나는 그림자에 반쯤은 질려버렸다’고 말했다’, 1915, 캔버스에 유채, 100.3×73.7cm, 온타리오 미술관

워터하우스는 그러고도 한 점을 더 만들었다.

그는 1915년에는 〈샬롯의 여인은 ‘나는 그림자에 반쯤은 질려버렸다’고 말했다〉를 내놓았다. 이번에는 일레인의 시점을 더 앞당겼다. 탑에 갇힌 그녀가 지겹도록 태피스트리를 짜는 모습을 그렸다. 일레인은 실과 베틀에 둘러싸여 있다. 그녀는 이 자체가 신물 나는 듯 뚱한 표정으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일레인은 눈을 흘겨 겨울을 본다. 베틀과 태피스트리 등 그녀의 방 일부를 비춰주는 거울은, 그 너머의 마을과 나란히 걷고 있는 남녀도 함께 보여준다. 일레인에게선 권태와 낙담, 지루함과 쓸쓸함을 느낄 수 있다. 굴러다니는 실뭉치 또한 그녀의 복잡한 마음을 대변한다.

추상 같은 저주

아서 휴즈, ‘The Lady of Shalott’

일레인을 향한 신의 저주는 추상(秋霜)같은 것이었다.

테니슨은 일레인의 처지를 애절히 노래했다. 워터하우스 또한 일레인의 모습을 비장하게 그렸다. 그러나 이들 또한 긴 세월 굳어진 그녀의 최후를 마음대로 바꾸지 못했다. 일레인을 태운 배는 랜슬롯에 있는 성에 닿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위에 올라탔던 그녀는 이미 죽은 상태였다. 금세 사신이 다녀간 것이었다. 눈 감고서 시간이 꽤 흐른 듯 시신은 차갑게 식어있었다. 이 기묘한 장면에 사람들이 몰려왔다. 영문 모를 이들은 아름다운 여인의 의문스러운 죽음을 놓고 웅성거렸다.

랜슬롯도 이들 틈에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도 일레인은 누군지 알 수 없는 낯선 존재였다. 설마 자기 탓에 목숨을 버렸으리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다. 랜슬롯은 돌아서 성으로 가려는 그때, 일레인에게서 알 수 없는 교감을 느꼈다. 왠지 모를 슬픔을 느낀 그는 마음을 바꿔 죽은 그녀에게 다가갔다. ‘샬롯의 여인….’ 배에 새겨진 글을 봤다. 잠시 생각에 잠긴 랜슬롯은 혼잣말하듯 입을 열었다. “아름다운 얼굴이구나. 신께서 은총을 내려주소서. 이 샬롯의 여인에게….” 성의 모든 기사가 성호를 그었다. 전설도 비극으로 끝났듯, 테니슨도 시를 이처럼 슬프게 매듭지었다. 워터하우스 또한 이 결말을 충실히 따랐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샬롯의 여인'(일부 확대·제비가 있는 부분)

워터하우스는 〈샬롯의 여인〉 속 일레인의 최후를 암시하는 결정적 장치를 담았다.

그것은 제비였다. 철새 제비는 일레인이 돌아갈 때가 됐다는 걸 알려주고 있다. 탑을 버린 그녀가 다시 갈 수 있는 곳은 이제 딱 한 장소뿐이다. 그녀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머물던 세상인 무(無)의 세계, 즉 죽음이다. 제비가 그려진 위치도 심상찮다. 하필 왼쪽이다. 당시 전통적으로 왼쪽은 불길하고 사악한 방향을 의미했다.

라파엘전파의 후예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Undine’

워터하우스는 신화나 전설 등 옛이야기를 누구보다 숭고하게 그릴 수 있는 화가였다.

특히 〈샬롯의 여인〉과 같이, 비운의 여인을 신비로운 분위기로 감싸 표현하는 데 탁월한 실력이 있었다. 워터하우스는 1849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산 영국인 화가 부부 아래 출생했다. 워터하우스는 갓난쟁이 시절부터 로마의 여러 예술품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예술성을 타고난 그였기에, 전설적 거장들의 고향에서 태어난 건 그 자체로 축복이었다. 워터하우스는 1854년, 부모와 함께 영국 런던으로 갔다. 집 근처에는 때마침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V&A)가 있었다. 영국 박물관과 내셔널 갤러리도 갈 만한 거리였다. 그는 낮에는 온갖 미술관을 쏘다녔다. 밤에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등을 읽었다. 그렇게 어릴 적부터 그만의 감수성을 다질 수 있었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힙노스와 타나토스 형제’, 1874, 캔버스에 유채, 69.8×90.8cm, 개인소장

워터하우스는 1871년부터 왕립 아카데미에서 미술 교육을 받았다.

진작에 재능을 보인 워터하우스는 1874년, 왕립 아카데미 전시에 〈힙노스와 타나토스 형제〉를 내걸어 벌써 호평을 받았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밤의 신 닉스(녹스)가 갑작스러운 산통 끝에 쌍둥이 형제를 낳는 장면이 있다. 어둠의 자식이 돼 세상 빛을 본 두 아이는 힙노스(솜누스)와 죽음의 신 타나토스(모르스)였다. 신화에 따르면 흰 피부의 힙노스와 검은 피부의 타나토스는 늘 같이 다녔다. 어른 신 앞에서 투정을 부릴 때도, 인간을 두고서 심술을 부릴 때도 항상 함께였다. 당연히 먹고, 자고, 쉬는 그 순간도 꼭 붙어있었다고 한다. 고대인은 잠과 죽음의 본질이 같다고 믿었다. 잠은 짧은 죽음이며, 죽음은 긴 잠이라고 여겼다. 그렇기에 이런 설정이 붙은 것이었다. 워터하우스는 이번에도 원작(原作)의 내용을 충실히 따랐다. 그러면서 갈고 닦은 감성을 곁들였다. 그는 힙노스와 타나토스를 앳된 미소년으로 그렸다. 달콤하게 자는 힙노스는 몽롱함을 이끄는 양귀비꽃을 안고 있다. 죽은 듯 잠든 타나토스는 향(香)에서 피어나는 듯한 연기를 맞이하고 있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무도회가 끝나고’, 1876, 캐너스에 유채, 76.2x127cm, 개인소장

“누구나 좋아할 만한 쉽고 아름다운 작품.”

그가 들은 찬사였다. 워터하우스는 2년 뒤 전시에는 〈무도회가 끝나고〉를 선보였다. 신비로운 느낌의 이 작품도 전작 못지않은 호응을 얻었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Juliet’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Hylas and the Nymphs’

워터하우스는 이 성과를 계기로 자기가 어떤 그림을 가장 잘 그리는지를 알았다.

그의 장기는 초상화도, 풍경화도 아니라는 걸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워터하우스는 신화와 문학 속 인상적 장면을 더욱 본격적으로 화폭에 옮겨 담았다. 영감을 줄 수 있는 책을 더 많이 읽고, 귀감이 될 수 있는 그림을 더 많이 봤다. 그런 그가 고전을 소재로 낭만적 작품을 선보인 라파엘전파에 빠져드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워터하우스는 특히 라파엘전파 특유의 요염한 여체(女體) 묘사에 푹 빠졌다. 그는 그 일원 중 번 존스(Burne Jones·1833~1898)를 가장 좋아했다. 존스의 그림을 달고 살며 여성의 고혹적인 자태를 공부했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성 에우랄리아’, 1885, 캔버스에 유채, 188.6×117.5cm, 테이트 브리튼

1885년, 워터하우스는 〈성 에우랄리아〉를 그렸다.

성 에우랄리아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Diocletianus·재위 284~305)의 그리스도교 박해가 이뤄진 로마 제국에서 출생한 여성이었다. 에우랄리아는 이런 분위기에서도 꿋꿋이 그리스도교를 믿었다. 이를 고깝게 본 황제 측은 끝내 굽히지 않는 그녀에게 참혹한 고문을 가했다. 그녀는 결국 십자가에 못박혀 순교했다. 그런데 에우랄리아의 명이 다한 그때, 그녀의 입에서 흰색 비둘기가 나와 하늘로 올랐다고 한다. 갑자기 눈보라가 몰아쳐 그녀의 벗겨진 몸을 덮었다고 한다. 그녀를 죽인 간수와 병사들은 그제야 몹쓸 짓을 했다는 걸 알았다는 후문이다.

워터하우스는 에우랄리아가 숨이 멎는 순간을 그렸다.

워터하우스는 에우랄리아를 최대한 아름답게 묘사했다. 풍성한 붉은 머리와 깊고 진한 눈매, 길게 뻗은 팔다리와 곡선의 몸 등 가능한 표현 수단을 총동원했다. 그리기에 쉽지 않은 자세지만, 그럼에도 이목구비 배치와 신체 비율에 심혈을 기울여 어긋난 곳 없이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이는 고민과 연구를 이어간 그가 라파엘전파의 방식을 확실히 익혔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워터하우스는 때마침 쏟아지는 눈과 몰려드는 비둘기 떼, 눈앞 펼쳐진 기적에 탄복하는 사람들 등 낭만적 요소도 자연스럽게 곁들였다. 그는 기교와 표현력에서는, 어쩌면 라파엘전파 선배들을 앞설 수도 있는 경지에 닿았다.

메아리가 된 소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The Soul of the Rose’

“어디 있어?”

“어디 있어?”

“빨리 나와!”

“빨리 나와!”

그리스 로마 신화 속 강의 신 케피소스의 아들 나르키소스가 외쳤다. 함께 사냥하러 온 동료들을 향한 외침이었다. 하지만 귓가에 닿는 건 그를 따라하는 웬 여성의 목소리였다. “이쪽으로 와!” “이쪽으로 와!” 나르키소스의 말에 한 요정이 한달음에 달려왔다. 나르키소스는 그 앞에서 얼굴 붉힌 요정을 차갑게 째려봤다. “너는 누구야? 왜 자꾸 따라 해?” “왜 자꾸 따라 해?” 나르키소스의 말을 요정은 또 따라하고만 있었다. 수상한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요정의 이름은 에코였다. 원래 에코는 수다쟁이였다. 말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그런 그녀는 불운한 일을 계기로 가정의 신 헤라의 미움을 받았다. “내가 너의 입을 막겠다. 너는 이제 남의 말만 따라할 수 있으리라.” 정말이었다. 그때부터 에코는 상대의 마지막 말만 겨우 따라할 수 있었다.

저주를 안고 살 수밖에 없던 에코는 곧 나르키소스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그러나 먼저 사랑을 말할 수 없는 처지였다. 에코는 나르키소스를 따라다니며 그의 말을 따라했다. 겨우 용기를 내 모습을 보였지만, 돌아오는 건 당연히 오해와 냉대뿐이었다. 나르키소스는 자존심이 센 남성이었다. 그간 모든 여성의 고백을 거절했다. 외려 모욕스러운 말을 내뱉으며 상처를 주곤 했다. 영문도 모른 채 서있는 나르키소르를 두고 에코가 할 수 있는 건 행동밖에 없었다. 에코는 그를 와락 껴안았다. “저리 가지 못해? 너 같은 것에 안기느니 차라리 죽고 말지.” 하지만 이 사내가 내뱉은 건 독설뿐이었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에코와 나르키소스’, 1903, 캔버스에 유채, 109.2×189.2cm, 워커 미술관

그간의 건방짐이 지나쳤던 걸까.

나르키소스는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에게 저주를 받고 만다. 그것은 샘물에 비친 제 모습을 사랑하게 되는 벌이었다. 나르키소스는 그 또한 애타는 사랑, 안타까운 사랑, 결코 이룰 수 없는 사랑 앞에서 괴로워했다. 나르키소스는 자기가 매몰차게 찬 숱한 여성처럼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채 여위어갔다. “아아, 헛되이 사랑받은 소년이여. 잘 있어!” 그는 그렇게 허무하게 생을 마감했다. 이를 훔쳐보던 에코 또한 “잘 있어!”라고 따라하며 그의 참담한 죽음을 애도했다. 워터하우스의 후기 대표작 〈에코와 나르키소스〉에는 이들의 마지막 모습이 담겨있다. 워터하우스는 특유의 장기를 발휘해 두 인물을 매력적으로 표현했다. 특히 주목되는 건 에코의 표정이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볼 수밖에 없는 애달픔, 그의 바보짓을 알면서도 막을 수 없는 안타까움 등 복잡한 감정이 그대로 서려있다. 가로지르는 강물로 두 사람 사이 거리감까지 자연스럽게 보였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Ophelia’, 1910, 캔버스에 유채, 119x71cm, 개인소장

원숙함을 얻은 워터하우스는 런던 세인트 존스 우드의 미술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아울러 왕립 아카데미 평의회 의원으로 예술가의 지위 향상에도 힘을 쏟았다. 그는 미술 교사의 딸 에스더 켄워시와 결혼했다. 둘 사이 아이는 없었다고 한다. 워터하우스는 1915년부터 암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오필리아〉 연작에 매달리던 그는 2년 뒤 사망했다. 그는 런던의 켄살 그린 묘지에 묻혔다. 워터하우스는 평생 작품 118점을 완성했다. 워터하우스는 평생을 인물과 배경은 물론, 소품 하나하나까지 정성껏 그렸다. 그의 정열은 장식성을 강조하는 아르누보 양식의 등장을 앞당겼다는 평도 받는다. 그의 화풍은 신화적인 주제를 세련되게 그린 아서 해커(Arthur Hacker·1858~1919) 등에게 영향을 줬다.

〈참고 자료〉

John William Waterhouse, Myth and Romance, 김기태, 미디어아르떼

테니슨 시선, 알프레드 테니슨, 지식을만드는지식

라파엘전파 회화와 19세기 영국문학, 손영희, 한국문화사

존 러스킨 라파엘전파, 존 러스킨, 좁쌀한알

변신 이야기, 오비디우스, 도서출판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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