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는 바라지 않는다 … 리움을 통째로 개인 실험실로 만든 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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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파레노, 막(膜), 2024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 입구 야외 데크. 11년간 자리를 지키던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이 철거된 자리에 커다란 타워 하나가 놓였다. 높이만 14m에 달하는 거대한 타워는 전시장으로 들어서는 이들을 지켜보듯 상하로 계속해서 움직인다.

지난달 28일부터 리움미술관은 통째로 한 남자의 실험실이 됐다. ‘리움 실험실’의 주인은 이탈리아 작가 필립 파레노. 그는 작가이지만 오브제나 회화 작업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파레노가 매료된 건 ‘시간’을 매체로 한 실험 예술. 그는 그렇게 ‘시간 예술의 선구자’가 됐다. 그의 세계를 조망하는 국내 최초이자 아시아 최대 규모의 전시를 위해 파레노와 리움은 2년 전부터 실험실 구상을 시작했다.

필립 파레노.

필립 파레노.

그렇게 파레노의 실험실이 ‘보이스’라는 제목으로 문을 열었다. 리움미술관은 데크, 로비부터 M2, M3, 블랙박스, 그라운드갤러리 등 전관을 기꺼이 털어 파레노의 실험 무대로 내줬다. 개관 이래 한 작가만을 위해 모든 전시장을 내준 건 파레노가 최초다. 1986년 그의 초기 작품부터 올해 만든 최신작까지 40여 점이 전시 돼 있다.

처음으로 만난 야외 타워도 그의 신작 ‘막(膜)’이다. 단순 설치작이 아니다. 그가 심은 ‘인공 두뇌’다. 42개의 센서를 탑재한 인공지능을 심어 미술관 주변의 습도, 소리, 기온 등 데이터를 수집하고 미술관 내부의 컴퓨터로 전송한다. 전시장 안에 놓인 모든 작품들은 이 인공 두뇌가 전달한 데이터가 만든 신호로만 소리를 내고 움직인다.

전시 제목 ‘보이스’가 알려주듯 이 전시는 목소리가 핵심적 역할을 한다.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면 의미를 알기 힘든 이상한 목소리들과 소음들이 관객을 휘감는다. 피아노는 제멋대로 소리를 내고, 천장에 설치된 15대의 대형 스피커는 끊임없이 돌아가며 말을 걸듯 목소리를 낸다.

리움을 휘감은 목소리는 전부 야외 인공 두뇌가 모아 온 데이터로 만들어 낸 가상의 언어다. 파레노는 이 언어에 ‘델타 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는 옹알이와 언어 그 사이 어딘가의 목소리를 구현하기 위해 ‘진짜 사람’의 음성과 인공지능을 결합했다. 지난해 4월에는 목소리의 주인을 찾기 위해 한국을 찾아 오디션을 열었고, 배두나가 그의 귀를 사로잡았다. 배두나의 목소리 파일에 인공지능을 섞어 현실과 가상 사이의 새로운 목소리를 창조했다.

리움미술관 필립 파레노 보이스(VOICES) 전시 전경.

리움미술관 필립 파레노 보이스(VOICES) 전시 전경.

2층 전시장에는 델타에이의 진수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 걸렸다. ‘안리’라는 이름을 가진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배두나의 음성으로 델타 에이 언어를 떠든다. 관객은 작품을 보고 있지만 이 캐릭터가 무슨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지 이해할 수 없다. 신개념의 언어 실험과도 같은 델타 에이를 두고 파레노는 “누구든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듣지 못한 것을 듣게 될 때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파레노는 자신의 실험실 안에서 미술관의 기본적인 역할을 깨부순다. 광활한 전시장 안에 풍선 물고기를 떠다니게 만들었다. 이곳에서 관객은 더이상 관찰자가 아니다. 전시장에 들어왔다는 이유만으로 물고기와 같이 어항에 갇힌 존재가 된다. 파레노가 의도한 ‘주객전도’다. 관람객이 다음 전시장을 향해 지나가기 위해서는 눈 앞의 풍선 물고기를 발로 차거나 밀어버려야만 한다. 그의 실험실에서는 ‘작품을 만져서는 안 된다’는 작품 감상의 기본 상식마저 깨졌다.

리움미술관 필립 파레노 보이스(VOICES) 전시 전경.

리움미술관 필립 파레노 보이스(VOICES) 전시 전경.

미술관 안에 눈사람을 만들어 넣기도 했다. 자연의 섭리가 그렇듯 눈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녹아 없어진다. 그러면 다시 빙수기로 눈사람을 또 만들어 집어넣기를 반복한다. 관객은 단 하루도 ‘똑같은 작품’을 볼 수가 없다. 시간에 따라 작품은 훼손되어 변하고, 다시 똑같은 것을 만든다 해도 어제의 그것과 완벽히 같을 수 없기 떄문이다. 작품을 항상 같은 상태로 보존하며 전시해야 한다는 미술관의 가장 첫번째 역할을 뒤집었다. 그는 “미술관은 비싼 작품을 그대로 지키는 통제된 환경이다”라며 “외부와 단절된 공간에 균열을 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파레노가 이번 리움을 무대로 내놓은 작품엔 ‘완성작’이 단 한 개도 없다. 작가와 관객, 주변의 환경 데이터가 하나로 합체되어 상호작용하고, 이로 인해 작품이 소리를 내고 움직이며 완성된다. 그래서 파레노는 “관객이 없는 미술관 속 내 작품은 죽은 것과 다름없다”고 말한다. 작품은 사람과 환경을 만나 유기체처럼 움직여야 비로소 생명이 피어난다는 것이다.

파레노는 리움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2월부터 서울에 살다시피 했다. 오자마자 손금을 읽듯 리움을 돌아다니며 건축을 읽는 작업을 가장 먼저 했다. 파레노는 “리움미술관을 내가 점유하기 위해서는 공간에 끌려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각기 다른 공간이 얽힌 리움의 특별한 건축을 내가 먼저 파악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필립 파레노, 차양 연작, 2016-2023

필립 파레노, 차양 연작, 2016-2023

이것만큼은 분명하다. 필립 파레노의 예술 실험은 난해하다. 도대체 떠다니는 물고기와 델타 에이로 거는 말들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려고 시도하면 골머리를 앓기 십상이다. 관람객들은 그저 전시장 안을 부유할 뿐이다. 필립 파레노는 이 지점을 파고들었다. ‘왜 우리는 작가의 작품과 그 의도를 반드시 이해해야 하는가?’.

이 전시엔 쉽게 보는 법도, 빠르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도 존재하지 않는다. 파레노가 ‘답안지’ 자체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자신이 펼친 예술 세계를 보여주고, 관객과 상호작용하기 위해 펼친 무대와 같다. 공간이 주는 사운드를 향해 눈을 돌리기도 하고, 들리는 소음에 돌아보기도 하는 등 공간 안에서 움직이는 경험만으로 충분하다.

미술관을 찾는 대부분의 관객에게 ‘전시 감상’이란 벽에 걸리거나 바닥에 놓인 작품을 감상하고 의미를 파악하는 과정을 의미하곤 한다. 하지만 파레노의 전시를 즐기려면 이 공식과 고정관념 자체를 깨부숴야만 한다. 넓은 리움미술관 안에 단 한 점의 그림과 조각 작품도 없는데다 그 의미를 알 법한 작품은 더더욱 없다. 우리가 가진 고정관념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새로운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것을 몸으로 알려주는 전시다.

리움미술관 필립 파레노 보이스(VOICES) 전시 전경.

리움미술관 필립 파레노 보이스(VOICES) 전시 전경.

파레노는 리움을 무대로 눈으로 보는 전시가 아니라 경험이 필요한 공연을 펼쳤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올 지 모르는 불특정다수의 관람객들을 상대로 ‘누구나 이해 가능할 법한’ 의미 전달을 포기했다. 그저 자기 작품들을 통해 스스로를 표출했다. 대중의 호불호와 이해의 여부는 이 전시의 본질이 아닌 것이다.

필립 파레노는 “나는 관객에게 감상 순서나 보는 방법을 설명할 마음이 없다”라며 “그러니 관객들도 원하는 만큼 전시장을 떠돌고 놀다가 가면 된다. 그게 몇달간 존재하는 내 세상을 즐기는 방법이다”라고 이야기했다. 그의 실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는 7월 7일까지 열려 있다.

최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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