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 의료인력 업무 재조정 기회로[동아시론/정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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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만을 위한 의료제도가 돼선 안 돼 간호사-약사 업무도 효율적 조정 필요 공공의료기관 지원 늘려 역할 키워야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

보건의료제도는 제공체계(delivery system)와 재원체계(financing system)로 나뉜다. 제공체계는 적정한 의료 인력, 의료기관, 병상을 통해 국민이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기전이다. 재원체계는 의료 이용의 대가를 지불하는 데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는 기전이다. 건강보험이 대표적이다. 한국은 1977년 공적 건강보험제도를 시작해서 1989년 ‘전 국민 건강보험’을 달성했다. 정부는 자금을 직접 마련하지 않아도, 건강보험료를 거두어 의료 제공자에게 지불하는 기전을 잘 만들면 됐다. 독일을 참고해서 일본이 선택한 건강보험 방식을 우리도 선택했다. 이를 ‘비스마르크형 의료제도’라 부른다. ‘베버리지형 의료제도’를 가진 영국처럼 정부가 제공체계에 직접 개입하지 않아도 됐다. 추가적으로 세금을 추렴할 필요도 없었다.

제공체계는 시장 기능에 의존하는 방식을 택했다. 정부의 개입은 방역, 면허제도 등 최소한에 머물렀다. 의료 인력 정책은 ‘대학 정원’을 통해 투입 인력의 규모를 정하면 끝이다. 그 인력이 무슨 전문 분야를 택하든 어디에서 근무하든 전적으로 개인 재량이다. 지역별로 보험의사의 쿼터가 있고 의료비 총액이 묶인 독일에 비하면, 한국은 의사들의 천국이다. 모든 권한은 의사에게 집중돼 있다. 의사의 처방에 따라 간호 인력은 간호와 간병을 하고, 약사는 조제를 한다. 간호사, 물리치료사는 독자 개업을 할 수 없다. 의사가 없어서 수술에 참여해도, 전공의가 문제시하면 간호사는 불법 근무가 된다. 국민 다수가 ‘재가 의료’를 원해도, 의사가 관심 없으면 간호사는 독자적으로 할 수 없다. 한국의 의료제도는 어느덧 ‘의사’만의 제도가 됐다.

의사의 높아진 임금을 지불하는 데 필요한 자금은 매년 급증하는 건강보험료가 알아서 착착 조달해준다. 작은 조합이 분립하던 시절에 겪었던 연체 지불 걱정은 기억에서 사라졌다. 2000년대 초 ‘통합 건강보험’을 허용하고 ‘의약분업’을 내줄 땐 쓰라렸을 것이다. 그 대신 평균 가격의 안정적 증가를 보장하는 ‘환산지수 계약’ 방식을 얻어냈다. ‘행위별 수가제’와 맞물려 전체 의료수입은 두 자릿수 가까운 연간 증가율을 계속했다. 수입을 나누어 가질 의사 수는 밀실 합의를 통해 줄였다. 이 상황을 깨려는 어떠한 시도도 물리칠 로비자금은 풍부했다.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전공의 파업’이 전가의 보도임을 확인했다. 지불 방식의 개편도, 디지털헬스의 활용도, 과잉병상의 억제도 의사의 수입에 영향을 준다고 판단되면 거부했다. 다수의 의사가 반대하지 않아도 된다. ‘일부 의사 집단’이라도 반대하면 대부분의 의료 정책은 블로킹된다.

‘의대 정원’을 놓고 그 전가의 보도가 다시 공중에 날아다닌다. 시민들은 불안해하지만, 사안의 본질을 조금씩 깨닫고 있다. 전임 의사협회장은 ‘정부’가 의사를 못 이긴다고 큰소리쳤다. 형국은 ‘깨인 시민’과 의사의 싸움으로 바뀌었다. ‘위기는 기회’다.

첫째, 인력 간의 업무 범위를 재조정해야 한다. 의사, 간호사, 약사 등 면허 인력 상호 간에는 전문성이 겹친다. 서로 영역 싸움을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의사에게만 독점권이 있는 ‘의료 행위’의 일부는 간호사의 능력 범위에 있다. 일본은 이런 분야를 ‘특정 간호’로 정하고, 교육받은 간호사가 ‘독자적으로’ 하게 한다. 우리도 일본처럼 간호사가 ‘독자 개업’해서 재가케어를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만성질환 관리에서 한의사와 약사의 역할은 확대돼야 한다. 종일 레이저 봉을 들고 직업병에 걸릴 정도로 피부미용에 종사하는 것이 의사에게 주어진 ‘업무독점’이 될 수 없다. 2017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건장관회의는 의료 인력 간의 독점적 업무의 벽을 헐고 유연성을 확보해야 함을 강조했다.

둘째, 공공 의료기관의 역할을 분명히 해야 한다. 민간 의료기관과 같은 가격, 같은 지불 방식을 적용하는 분야에서는 공공 의료기관의 역할이 적다. 공공 의료기관은 민간 의료기관이 하려 하지 않는 일을 할 때 존재 의의가 있다. ‘착한 적자’를 많이 내는 공공병원은 공공의료를 제대로 하는 병원이다. ‘착한 적자’는 세금으로 충당해야 한다. ‘착한 적자’를 장려해야지, 흑자 내라고 민간과 수익 경쟁을 하라 해서는 안 된다. 공공 의료기관이 고액의 인건비를 지급하면서 의사를 충원해서는 더욱 안 된다. 1억 원대 연봉으로 골라서 계약할 수 있을 만큼 의사가 충분히 공급돼야 한다. ‘의대 증원’이 공공의료의 확충과 필수의료의 확보에 ‘필요조건’인 이유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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