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한국 축구의 ‘황금세대’가 ‘도금세대’의 오명을 쓸 위기에 처했다.

클린스만호는 전술만 부족한 게 아니었다. 선수들의 ‘로열티’ 또한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파만파 이어지는 한국 축구를 둘러싼 논란에 온 나라가 떠들썩한 모습이다.

영국 대중지 더선은 14일 한국 대표팀 내 심각한 갈등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보도를 했다.

더선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시간은 요르단전 바로 전날인 5일(현지시간) 저녁 식사 시간에 발생했다.

이날 젊은 축에 속하는 선수들 몇몇은 저녁 식사를 별도로 일찍 마쳤다. 그러고는 탁구를 치러 갔다.

살짝 늦게 저녁을 먹기 시작한 선수들이 밥을 먹는데 이강인 등이 시끌벅적하게 탁구를 치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주장 손흥민(토트넘)이 이를 제지하려고 했고, 갈등 끝에 격분한 손흥민이 이강인의 멱살을 잡았다. 이강인은 주먹질로 맞대응했는데 손흥민이 이를 피했다.

다른 선수들이 둘을 떼어놓는 과정에서 손흥민의 손가락이 탈구됐다.

클린스만 감독은 이런 상황 뒤 이강인을 경기에서 제외하지 않았다. 이강인은 부임 초반 극심한 부진에 시달린 클린스만호가 지난해 하반기 5연승 반전을 이루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영국 대중지 더선이 14일(한국시간) 손흥민이 아시안컵 준결승 전날 저녁 후배들과 언쟁 과정에서 손가락이 탈구됐다고 보도했다. 축구협회 관계자는 이에 대해 “대회 기간에 선수들이 다툼을 벌였다는 보고를 받았다”라며 “일부 어린 선수들이 탁구를 치러 가려는 과정에서 손흥민과 마찰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손흥민이 손가락을 다쳤다”고 설명했다. 사진은 지난 7일 카타르 알라이얀 아흐마드 빈 알리 스타디움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요르단과의 준결승전이 끝난 뒤 경기장을 나서는 손흥민과 이강인. [연합]

요르단전은 이러한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다.

경기 뒤 믹스트존에서 손흥민은 “내가 앞으로 대표팀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다”며 “감독님께서 저를 더 이상 생각하지 않을 수 있고, 앞으로의 미래는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탁구 사건’ 뒤 이강인을 계속 신임한 클린스만 감독의 선택을 보면, 손흥민이 어떤 맥락에서 이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이강인은 이와 관련해 이날 오후 인스타그램에서 “지난 아시안컵 4강전을 앞두고 손흥민 형과 언쟁을 벌였다는 기사가 보도됐다”며 “언제나 저희 대표팀을 응원해주시는 축구팬들에게 큰 실망을 끼쳐드렸다. 정말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이강인은 “제가 앞장서 형들의 말을 잘 따랐어야 했는데, 축구팬들에게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드리게 돼 죄송스러울 뿐”이라며 “저에게 실망하셨을 많은 분들에게 사과드린다. 축구팬들께서 저에게 보내주시는 관심과 기대는 잘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대표팀 내 갈등은 손흥민과 이강인 사이에만 있었던 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회 내내 선수들은 나이 별로 따로 노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훈련장에서 그룹으로 훈련할 때도 선수들은 같은 무리끼리 어울리곤 했다.

해외파와 국내파 사이에도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1월 중국과의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원정 경기를 마친 뒤 손흥민, 김민재, 황희찬, 이강인 등 유럽파 선수들이 한국에 일찍 돌아가기 위해 사비로 전세기를 임대해 귀국하기도 했다. 원정 일정이 끝나지 않았는데 개인 행동을 한 셈이다. 대표팀, 대한축구협회가 ‘허락’했다지만, 국내파 선수들로는 상대적 박탈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영국 대중지 더선이 14일(한국시간) 손흥민이 아시안컵 준결승 전날 저녁 후배들과 언쟁 과정에서 손가락이 탈구됐다고 보도했다. 축구협회 관계자는 이에 대해 “대회 기간에 선수들이 다툼을 벌였다는 보고를 받았다”라며 “일부 어린 선수들이 탁구를 치러 가려는 과정에서 손흥민과 마찰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손흥민이 손가락을 다쳤다”고 설명했다. 사진은 지난 7일 카타르 알라이얀 아흐마드 빈 알리 스타디움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요르단과의 준결승전 당시 손흥민과 이강인 모습. [연합]

축구협회는 클린스만호의 카타르 아시안컵 성과를 평가하는 전력강화위원회를 15일 연다.

정몽규 회장 등 축구협회 집행부는 전력강화위원회의 평가를 참고해 클린스만 감독의 거취를 최종 결정할 방침이다.

만약 새 감독 체제가 들어선다 해도 대표팀은 선수간 갈등의 불씨가 남아있는 상태로 3월 A매치 기간(18~26일)을 맞이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 축구는 지난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4강의 성적을 냈다.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 등 유럽 무대에서도 ‘톱 클래스’로 인정받는 선수들이 공수에 포진해 ‘황금 세대’라는 평을 받았지만, 64년 만의 우승 목표는 이루지 못했다.

yul@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