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복판 명당의 기구한 운명… 27년 흉물서 최고급 주거단지로 [스페이스도슨트 방승환의 건축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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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죽은 건물의 부활’, 덕수궁 디팰리스

덕수궁·경희궁 인근 서궐 영역의 부지
시행사 파산에 분양대금 소송 등 곡절
1993년 이후 세 번이나 이름 고친 건물

2016년 ‘탁월한 입지’덕에 아파트 변신
덕수궁 돌담길 패턴 등 재해석해 건립
건물은 들어서는 땅을 이길 수 없는 법

정체를 바꾸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이름을 바꿔야 한다. 서울 한복판에 이름을 세 번이나 고친 건물이 있다. 첫 번째 이름은 ‘문화타워’로 지금으로부터 31년 전인 1993년에 처음 등장했다. 새문안로를 따라 지정된 신문로 2구역 중 제8지구를 재개발하겠다며 토지소유자를 모집할 때 시행사 거삼이 이 이름을 사용했다. 2년 뒤 문화타워는 기산과 화남건설이 시공을 맡아 착공됐다. 하지만 외환위기와 함께 거삼의 대표가 분양금을 다른 지구 개발 사업과 개인 용도로 전용하면서 사업은 중단됐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나 건물의 이름이 바뀌었다. 주변에 덕수궁과 경희궁이 있고 사업 부지가 서궐(西闕) 영역이었다는 점을 드러내기 위해 ‘킹덤타워’가 새로운 이름이 됐다. 시행사도 거삼에서 보스코산업으로 바뀌었는데 실질적으로 같은 회사였다. 당시 분양시장에서는 풍수지리 마케팅이 한창이었는데, 특히 조선 시대 왕궁터나 그 인근에서 진행되는 사업에서는 ‘왕이 태어나는 용맥’, ‘백두대간의 정기’와 같은 문구를 홍보에 적극 활용했다. 시공사도 울트라건설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킹덤타워 분양은 이번에도 실패했다.

덕수궁 디팰리스는 이름을 세 번이나 바꾸는 우여곡절 끝에 사업이 시작된 지 27년, 공사가 중단된 지 17년 만에 준공됐다. 평면을 비롯해 외관까지 바뀐 디팰리스는 이제 탁월한 입지를 통해 그 주변과 정동에 변화를 꾀하고 있다.

다시 3년이 지난 2002년, 이번에는 ‘한진 베르시움’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당시 건설사들은 자신들만의 주택 브랜드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삼성건설의 ‘래미안’과 대림산업의 ‘e편한세상’이 이때 론칭됐다. 그리고 GS건설의 ‘자이’와 현대건설의 ‘힐스테이트’가 이보다 몇 년 늦게 쓰이기 시작했다. 시행사는 시공사를 울트라건설에서 한진중공업으로 바꾸면서 시공사 브랜드를 분양에 활용하기 위해 ‘베르시움’이라는 이름을 착안했던 것 같다. 하지만 한진중공업은 2006년부터 ‘해모로’라는 주택 브랜드를 사용하고 있다.

세 번째 분양을 진행할 때는 삼성생명보험이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제공하고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이 신탁 사무 및 대리사무를 맡기로 했다. 당시 분양 소식을 알리는 기사에 따르면 한진중공업은 오피스텔 214실을 평당 790만원 정도에 분양하고자 했는데 중도금 전액 무이자 대출뿐만 아니라 입주 후 최초 1년간 12%의 임대수익을 보장해 주겠다고 홍보했다(머니투데이 2002년 12월17일자).

이름을 두 번이나 바꾸었지만 이번에도 사업은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심지어 인허가권자였던 종로구청이 건물 높이가 설계보다 높다는 것을 발견하고 분양 중단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시행사는 이를 무시하고 분양을 강행했고 결국 이를 모르고 분양을 받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았다. 한진중공업도 2003년 공사대금을 받지 못해 공사를 중단했다. 다른 악재까지 겹쳐 한진중공업의 경영 상태는 나빠졌고 시행사도 3년 뒤 파산했다.

이후 공정률 78%에서 멈춘 이 건물은 도심의 흉물이 되었다. 개발과 관련된 기업과 수백억 원의 피해를 본 수분양자들은 시행사와 시공사를 사기 및 횡령 혐의로 고소했고 분양 대금 반환 소송 등의 법적 다툼이 이어졌다. 법원은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7차례나 공매를 추진했지만 매번 유찰됐다.

상점이 있는 지하로 연결되는 선큰 가든.

내가 이 건물의 존재를 알게 된 시기는 공사가 멈춘 2003년이었다. 당시에는 앞서 언급한 내력을 잘 몰라서 공사 중인 줄 알았다. 다만, 밝은 회색의 밋밋한 외관과 반복적으로 뚫린 창문이 붉은 벽돌의 근대 건축물이 밀집된 정동과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쓰지 않는 건물은 생기를 잃는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면서 그 주변을 다가가기 싫은 장소로 만든다. 건물을 처음 본 뒤로 정동에 갈 때마다 방치된 한진 베르시움은 빨리 철거되기를 바라는 존재가 되어 갔다.

한진 베르시움에 대한 소식을 다시 듣게 된 건 2016년이었다. 당시 다니고 있던 회사에서 디자인위원회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이 건물의 평면을 재설계하는 안건이 위원회에 개진됐다. 어찌 된 영문인지 알아보니 그해 2월 홍콩계 투자회사인 퀸스타운리미티드가 이 건물을 관할하고 있던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부와 건물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거(Gaw) 캐피털 파트너스가 출자한 덕수궁PFV가 시행을 맡았다.

퀸스타운리미티드가 꼬일 대로 꼬인 이 건물을 주목한 이유는 단 하나, ‘탁월한 입지’였다. 덕수궁PFV는 건물이 서울 도심과 가까워 통근하기 편하고 무엇보다 덕수궁과 경희궁 인근이라는 입지를 최대한 활용해 ‘초고급화’ 전략을 내세웠다. 그리고 이에 걸맞은 수준의 아파트를 분양하기 위해 기존 아파트 세대수를 70가구에서 58가구로 줄이고 평균 전용 면적을 118㎡에서 234㎡로 늘렸다. 세대수가 줄어드는 만큼 당연히 분양가는 올라갔다(평당 1480만원에서 5500만원).

기존 구조체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 단위 세대 면적을 넓혀야 했기 때문에 평면을 재설계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세대는 침실 벽 중간에 기둥이 튀어나와 있기도 하고 방이 좁고 길게 나뉘어 있기도 하다.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디팰리스의 준공은 그 주변과 정동에 변화를 가져왔다. 과거 특색 없는 외관은 전벽돌을 바탕으로 브라운 계열의 재료와 전통적인 디테일이 사용됨으로써 인근 근대 건축물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1층에는 카페와 빵집이 입점함으로써 환대 성격이 강해졌고 상점이 있는 지하로 연결되는 성큰 가든(sunken garden)이 설치됨으로써 건물 앞을 지나는 새문안로 2길과의 관계성도 높아졌다.

당시 설계를 총괄했던 삼우설계의 이건섭 전무는 덕수궁 돌담길의 패턴과 경운궁의 후원이었던 상림원(上林苑)을 현대적으로 해석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자원을 낭비하고 폐기물을 발생시켜 온 우리의 재건축 문화에서 디팰리스가 조금은 다른 개발 방식을 적용해 성공한 프로젝트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며 디팰리스의 준공 의미를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건물은 건물이 들어서는 땅을 이길 수 없다. 땅의 크기나 형태가 건물의 규모와 모습을 결정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입지적인 특징은 설계자가 결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행사가 건물의 이름을 몇 차례나 바꾸어 가면서 사업을 계속하고자 했던 고집, 공사가 중단된 건물이 더 도드라져 보였던 이유 그리고 복잡다단한 법적 문제와 이해관계를 엉킨 실타래 풀듯 하나하나 해결한 수고도 이 건물이 서울 도심과 가까운 뛰어난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이제 디팰리스가 자신을 부활시킨 이유였던 입지를 활용해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지켜보아야 할 때다.

방승환 도시건축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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