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촌놈이 쓴 해양생물 소설, 현실보다 터무니없진 않을거예요”|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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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정보라 작가… 4년전 남편 따라 포항으로 이사

“바닷가 걸으면 마술속 사는것 같아

해양생물 없어지면 인간도 죽어

살아남으려면 기후위기 대응해야”

소설집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를 펴낸 정보라 작가가 경북 포항시 죽도시장에서 웃고 있다. 그는 “사실 소설집 제목을 ‘포항
소설’로 하고 싶었다. 출판사가 그런 제목으로는 안 팔린다고 말려서 제목을 바꿨다”고 말했다. 래빗홀 제공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한국의 한 대학 건물. 복도를 꽉 채우는 크기의 거대 문어가 빨판투성이 다리를 굼실거리며 이렇게 말한다. 대학 강사인 ‘나’는 강사들의 권리를 보장하라며 시위 중이다. 진지한 상황이지만 문어의 이상한 행동에 ‘나’는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시위를 주도하는 ‘위원장님’의 행동은 더 가관이다. 뒤에서 입맛을 다시던 ‘위원장님’은 전화기로 문어를 때려 기절시킨다. 그러곤 머리 안쪽을 뒤집어 가위로 자르고 내장을 잡아당겨 꺼낸다. ‘위원장님’은 어이없어하는 ‘나’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눈하고 이빨 떼기 전에 물에 씻어야 되는데 좀 도와주실래요?”


최근 출간된 정보라 작가(48)의 소설집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래빗홀·사진)에 수록된 단편소설 ‘문어’의 일부다. 그는 4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소설 대부분은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경북대 사회학과 강사였던 임순광 전 한국비정규교수노조위원장과 농성을 하다 사귀고, 2022년 11년간 강사로 일한 연세대를 상대로 퇴직금과 주휴·연차수당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그의 인생이 작품에 진하게 녹아 있다는 것이다. “남편과 연애를 하다 문어회를 먹으러 갔어요. 그런데 남편이 ‘한 놈은 맛이 갔고 다른 한 놈은 싱싱하다’고 말하더라고요. 허락을 받고 그 대사도 소설에 녹였죠.”

그는 단편소설집 ‘저주토끼’(2017년·래빗홀)로 2022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르며 주목받았다. 미국 예일대에서 러시아 동유럽 지역학 석사, 인디애나대에서 슬라브 문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연세대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러다 2020년 남편을 따라 경북 포항시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포항 죽도시장에서 건어물 가게를 운영하는 시어머니를 따라다니며 소설의 주인공이 된 여러 해양 생물을 떠올렸다. 그는 “포항 송도해변에서 포스코와 해수욕장을 번갈아 보면 소설에 등장하는 미래도시 같다”며 “‘서울 촌놈’인 나는 바닷가를 걸을 때마다 마치 마술 세계에 사는 것처럼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소설집에 담긴 이야기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이 소설보다 더 터무니없고 더 마술적이고 더 잔혹할 수 있다”고 했다.

신작에 실린 6개 단편은 상상과 현실이 온통 뒤섞인 정 작가 특유의 ‘마술적 사실주의’가 돋보인다. 대게는 인간에게 러시아어로 “도와주시오”라고 말을 걸고(단편 ‘대게’), 우주 해파리는 인간 곁을 떠돈다(단편 ‘해파리’).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편견과 비판(단편 ‘상어’), 생태계 파괴로 고통받는 해양 생물들에 대한 고민(단편 ‘고래’)처럼 사회적 문제도 담았다. 그는 “서울을 떠나 바닷가에 산 뒤로 해양 생태계 문제에 민감해졌다”며 “생물들이 없어지면 인간도 죽는다. 지구 생물체가 살아남기 위해선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는 학생들을 사랑했고 강단을 사랑했고 교육의 가치를 진심으로 믿었다”(단편 ‘문어’)처럼 자신의 고백이 담긴 듯한 문장도 눈에 띈다. “이 남자와 결혼한다면 마지막 순간까지 싸울 수 있을 것 같았다”(단편 ‘대게’)처럼 남편에 대한 진한 애정이 드러나는 대목에서는 소설보다 에세이처럼 읽힌다. 최근 수술을 받았다는 남편의 안부를 묻자 그는 쾌활한 목소리로 답했다.

“남편이 엊그저께 퇴원했거든요. 지금 통화도 옆에서 들으면서 계속 추임새를 넣고 있어요. 요즘 오징어, 문어 포획량이 줄어 어민들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꼭 써 달라네요….”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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