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빽한 쇠창살 안, 서로 스며드는 두 남자|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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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여인의 키스’ 7년만에 무대에

성소수자-정치범의 사랑 이야기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는 이념과 성격의 장벽을 뛰어넘은 몰리나(위)와 발렌틴의 사랑을 그린다. 레드앤블루 제공

방 안에 있는 거미를 보면 대체 어느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건지 알 수가 없다. 빽빽한 쇠창살로 둘러쳐진 감옥에도 온기가 들 틈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거미여인’ 몰리나는 감옥만큼 굳게 닫혀 있던 발렌틴의 마음에 스며들며 잿빛 바닥을 색채로 가득 메운다. 마치 거미처럼, “자신의 자리에서 온유하게 기다리면서”.

서울 종로구 대학로 예그린씨어터에서 공연되고 있는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중 일부다. 아르헨티나 작가 마누엘 푸이그가 1976년 발간한 동명 소설이 원작으로, 수감 중인 두 인물 몰리나와 발렌틴이 서로에게 빠져드는 과정을 그렸다. 국내에서는 2011년 초연돼 2017년 세 번째 시즌을 거쳐 7년 만에 다시 막이 올랐다. 성소수자 몰리나 역은 배우 전박찬, 정일우, 이율이 돌아가며 연기한다. 정치범 발렌틴 역은 박정복, 최석진, 차선우가 맡았다. 연극 ‘오펀스’, 뮤지컬 ‘라카지’ 등을 만든 레드앤블루가 제작했다.

이념과 성격이 정반대인 두 주인공을 대사와 소품을 통해 세밀하고 감각적으로 그렸다. 스스로를 여자로 생각하며 “지금을 즐겨” “난 내가 슬프다고 느끼면 울 거야”라고 말하는 몰리나의 자리는 형형색색의 스카프와 포스터로 장식돼 있다. 반면 냉철한 반정부주의자 발렌틴은 “내게 생의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은 용납하지 않는다”며 낡은 책 두어 권만 머리맡에 두고 이상을 위해 인내한다.

감옥이라는 단일한 무대세트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2인극이지만 몰리나가 발렌틴에게 들려주는 영화 이야기가 현실에 환상을 중첩시켜 입체감을 더했다. 원작 속 길게 서술되는 영화 이야기는 핵심만 남기고 과감히 덜어내 두 인물의 서사에 대한 집중도를 높였다. 31일까지, 전석 6만6000원.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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