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국 두 번 먹었다간” 아무도 몰랐다…충격적인 사연 [퇴근 후 부엌]”- 헤럴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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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부엌

술에 절어 해장국을 시켜만 먹다 어느 날 집에서 소고기뭇국을 끓여봤습니다. 그 맛에 반해 요리에 눈을 떴습니다. 산더미 같은 설거지가 기다리고 있지만 나를 위해 한 끼 제대로 차려먹으면 마음이 충만해집니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한 끼에 만원이 훌쩍 넘는 식대에 이왕이면 집밥을 해먹어야겠다. 결심이 섰습니다. 퇴근 후 ‘집밥러’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풀었습니다.

요리와 재료에 담긴 썰도 한 술 떠 드립니다.

[헤럴드경제=신주희 기자] 독자 여러분은 연초에 떡국을 몇 번 드시나요? 저는 새해에 한 번 그리고 음력설에도 꼭 챙겨 먹습니다. 나이를 더 먹고 싶지 않지만 설날 큰집에서 끓인 떡국을 거르기라도 하면 허전합니다. 그러나 불과 50년 전까지만 해도 음력설에는 떡국을 눈치 보며 먹어야 했습니다. 정월 초하루에는 떡방앗간과 고깃집마저 조업을 금지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죠. 오늘은 떡국에 얽힌 역사와 떡집까지 단속했던 황당한 얘기를 전해드릴까 합니다.

[음식 썰]

초하룻날, 떡국이 팔릴 것 같지 아니하여 화동 어떤 떡국집 주인에게 물어보았더니, “서울에 집이 있는 사람이야 누가 오늘 같은 날 떡국을 못 먹겠습니까마는 오늘 떡국을 먹지 못하면 까닥없이 섭섭하다 하여, 부모를 떠나 시골서 올라온 학생들의 주문이 하도 많기에 이렇게 문을 열었습니다.

〈지방 학생 위해 떡국집은 개점〉 1926년 2월 14일자 동아일보 4면

예나 지금이나 설에 떡국을 먹지 못하면 섭섭했던 건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기사가 쓰인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음력설은 홀대하고 양력설을 강요했던 일은 익히 알려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신문에서 떡국 먹는 풍속 등 명절 분위기를 담을 만큼 음력 설은 중요한 날이었습니다.

당시 일제는 ‘이중과세'(二重過歲)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양력 설 한 번만 챙길 것을 주장했습니다. 이중과세라 하면 세금을 두 번 매긴다는 의미처럼 들리지만 여기서는 새해를 두 번 쇤다는 뜻입니다. 낭비는 이중과세의 대표적 폐해로 꼽혔습니다. 부지런히 일해야 하는 국민들이 양력설과 음력 설 두 번이나 쉬는 걸 구실 삼았죠.

문제는 해방 이후에도 역대 대통령들이 나서 이중과세 금지를 주창하면서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1950년부터 무려 1970년대까지 정부가 나서서 음력설을 쇠는 일은 시간 소비와 물자를 낭비하는 행태라며 비판하고, 단일과세 풍속 정착을 위해 대책을 마련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방앗간에서 떡짓기 금지’입니다. 정부당국이 작성했던 기록도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1953년 작성된 ‘음력 과세방지에 관한 건’ [국가기록원]

1953년도 국무총리비서실에서 제작한 ‘음력 과세방지에 관한 건’을 살펴보면 설 명절에 ‘떡방아, 가축도살, 가주조(집에서 술빚기)등을 단속하여 물자 소비를 방지할 것’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차례를 지내고 음복을 하려면 음식이 필요한데 정부가 나서서 방앗간과 정육점 셔터를 강제로 내린 것입니다. 각 지자체에서도 단속반을 꾸려 특별단속에 나섰다는 얘기도 전해집니다.

물론 ‘이중과세’ 금지 지침에도 와중에도 음력 정월 초하루만 되면 떡방앗간에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동안 음력으로 설을 지내온 국민의 정서를 바꾸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유신 이후인 1974년에도 이중과세는 정부의 골칫거리였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집권 기간인 1974년, 행정자치부 의정관리국에서는 ‘신정 단일과세의 정착화를 위한 지시’라는 지침을 마련했습니다.

1974년 행정자치부 의정관리국에서 작성한 ‘신정단일과세의 정착화를 위한 지시’ 문건 [국가기록원]

음력 설 대신 양력설을 장려하기 위해 부처별로 대책을 꾸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문건을 보면 농수산부에서 구정 때 양곡과 육류 소비를 절약하자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반면 양력 설에는 떡국 차례, 떡국 먹기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펼쳤다고 전해집니다. 떡국을 신정 단일 과세 정책에 이용한 셈이죠.

지극히 정치적이었던 떡국이 언제부터 민족을 대표하는 새해 음식이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떡국에 대한 기록은 조선 중기 때 본격적으로 등장합니다. 조선 중기 문인인 이식이 쓴 ‘택당집’에서는 ‘새해 첫날의 제사상을 차릴 때 병탕(餠湯)과 만두탕을 한 그릇씩 올린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병탕을 풀이하면 떡을 넣고 끓인 탕 정도 되겠습니다. 이후 조선 후기 세시풍속을 적은 서적 ‘동국세시기’와 ‘열양세시기’에는 떡국은 새해 차례와 아침식사 때 없으면 안 될 음식이며, 손님 접대용으로 꼭 내놓았다고 적혀 있습니다.

동국세시기는 떡국이 하얗다고 해서 ‘백탕'(白湯)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기록된 떡국은 지금의 떡국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지금은 소고기 국물로 맛을 낸 반면, 그 시절 떡국은 꿩으로 육수를 내고 고춧가루를 넣었습니다. 떡 모양 역시도 엽전 모양이었습니다. 어슷하게 썰어 세로로 길쭉한 오늘날의 떡국점과는 다르죠. 고춧가루는 꿩고기의 잡내를 없애기 위함이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동그랗게 썬 떡국점은 엽전과 새해의 해 모양을 상징했습니다. 떡국을 먹으면 한 살을 먹었다고 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떡국의 또 다른 이름은 ‘첨세병’인데 이는 나이를 하나 더 먹는 떡이라는 뜻입니다. 조선시대 후기 실학자 이덕무는 〈청장관전서〉에서 떡국을 ‘첨세병(添歲餠, 나이를 더하는 떡)’이라고 하며 더 이상 나이를 먹고 싶지 않다고 한탄하기도 했습니다. 조선 시대에도 나이 먹기 싫은 건 지금과 똑같았나 봅니다.

떡국의 얽힌 이야기만 풀기에는 아쉬워 직접 한 그릇 끓여봤습니다. 비교적 간단한 요리라 만만하게 봤지만 고명이 없었으면 ‘망한 음식대회 출전’감인 비주얼이었습니다. 요리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는 뒤에서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떡국은 어떤 육수를 쓰냐, 고명을 어떤 걸 얹느냐에 따라 조리 시간도 모양도 천차만별입니다. 계란지단 없이 국물에 계란을 풀면 5분만에도 만들 수 있지만 계란지단, 꾸미(경상도식 간 고기 조림)을 올리면 시간이 좀 더 걸립니다. 연휴에 모처럼 여유도 있으니 꾸미 떡만둣국 레시피로 준비해 봤습니다.

(간단해 보였던) 떡만둣국 레시피

▶재료는 1인분당 떡 한주먹, 코인 육수 1개 또는 사골 팩, 만두 취향껏, 다진 소고기 100g, 다진 마늘 반 숟갈, 파, 계란 1개, 국간장 1숟갈, 참치액 1숟갈, 진간장 1숟갈, 후추입니다.

떡국 재료. 대파, 계란, 간 소고기, 다진 마늘, 떡, 만두 (만두는 협찬이 아니며 내돈내산입니다.)

1. 떡을 찬물에 30분간 불려둡니다.

2. 그 다음은 계란지단입니다. 노른자, 흰자를 분리해 부쳐도 되지만 번거로우니 흰자, 노른자를 섞어 만들었습니다. 식용유를 두른 팬에 계란물을 풀고 약불로 골고루 익혀줍니다. 도마 위에 올려두고 한 김 식힙니다. 바로 썰면 지단이 찢어지니 그 사이 팬에 꾸미를 볶습니다.

3. 다진 소고기에 진간장 1스푼, 후추를 넣고 볶습니다. 마시다 남은 소주나 청주를 넣어 볶아주면 잡내가 사라집니다.

4. 고명이 완성되면 이제 국물을 낼 차례입니다. 약 500㎖ 물에 다진 마늘, 코인 육수, 국간장과 참치액을 넣습니다. 육수가 팔팔 끓으면 떡을 넣고 떡이 떠오르기 시작하면 만두를 넣습니다. 만두와 떡을 같이 넣게 되면 만두가 풀어질 수 있습니다.

5. 지단과 파를 썰어냅니다. 만두가 다 익으면 그릇에 떡국을 담아내고 꾸미와 계란 지단, 파를 얹으면 완성입니다.

누런 국물, 갈기갈기 찢어진 떡…지옥에서 온 떡만둣국

저는 참치액 대신 국간장 2큰술을 넣었습니다. 간은 딱 맞았지만 문제는 코인 육수까지 넣으니 하얗게 되어야 할 떡국이 슬슬 누런색으로 변했다는 것입니다. 끓어오르는 국물 속에서 보이지 않던 떡을 건져 올렸더니 또 다른 난관이 닥쳤습니다. 냉동실에 보관한 떡이 문제였습니다. 갈기갈기 찢어진 떡을 보는 순간 이 콘텐츠를 접어야 하나 잠깐 망설였습니다.

요리 한 줄 평.

고명으로 수습하기 전까지는 지옥에서 온 떡국같음.

맛은 있음. (꾸미가 역할을 다 함)

뽀얀 색감을 위해 코인 육수 대신 차라리 시판 사골국을 쓰는 것을 추천.

냉동 떡을 사용할 경우 물에 닿지 않도록 봉지에 넣고 찬물에 담가 해동을 하거나 봉지째 냉장실에서 자연 해동해야.

고명으로 수습한 떡국. 신주희 기자

joo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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