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의 문화톡톡] 아주 오래된 미래 학교폭력 2

bet38 아바타


누구 좋으라고. 살아 있으니 우리 또 만났잖아.

“어느 한 시기에 그 사회의 정신적 상태가 일시적인 자살의 빈도를 결정한다. 각 사회는 그 국민을 자살로 이끄는 일정한 양의 에너지로 이루어진 집단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자살자의 행동은 얼핏 보기엔 개인적 기질을 나타내지만 실은 그들이 외적으로 표출하는 사회적 조건의 보완이며 연장인 것이다. ”

에밀 뒤르켐 「자살론」

<더 글로리>의 가해자가 주인공에게 그때 죽여버렸어야 했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주인공은 “누구 좋으라고. 살아 있으니 우리 또 만났잖아.”라고 대답한다. 

드라마 전개상 주인공이 복수를 향해 가고 있는 순간이지만, 가해자에게 피해자의 죽음은 결과적으로 안 좋은 일이 아니다. 피해자는 살아 있어야 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어쨌든 살아 남도록 누군가는 도와야 하는 것이다.

아동·청소년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점은 새삼 놀랍다. 통계청에서 발간한 자료를 보면 2021년에 인구 10만 명당 2.7명으로 2000년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 

12~14세 자살률은 2000년 1.1명에서 2009년 3.3명으로 증가한 이후 2016년 1.3명까지 감소하였으나, 다시 증가추세를 보여 2021년에는 5.0명이나 된다. 15~17세의 경우는 2009년 9.1명에서 감소 추세를 보이다가 2020년에 9.9명으로 증가했으나 2021년에는 9.5명으로 소폭 감소하였다. 사실 소중한 아이들이 스스로 삶을 마감한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현재의 우리는 굳이 뒤르켐의 시각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이들의 죽음이 오롯이 그들의 선택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정부의 노력은 계속되어 2014년 국회를 통과하여 2015년 7월 21일부터 인성교육진흥법이 시행되고 있다. 이 법은 인성(人性)을 갖춘 국민을 육성하는 것이 목적이며, 교육부 장관 소속으로 인성교육 진흥위원회를 두고 5년마다 인성교육 종합계획을 수립하는데 “핵심 가치·덕목”과 “핵심 역량”선정에 대한 사항이 포함되어야 한다. “핵심가치·덕목”은 예(禮), 효(孝),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 등의 마음가짐이나 사람됨과 관련되는 핵심적인 가치 또는 덕목을 말한다. “핵심 역량”은 핵심가치·덕목을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실천 또는 실행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공감· 소통하는 의사소통 능력이나 갈등 해결 능력등이 통합된 능력을 말한다. 이 법에 따라 전국의 초·중·고교는 매년 초 인성교육 계획을 교육감에게 보고하고 인성에 바탕을 둔 교육과정을 운영해야 한다. 교사들은 인성교육 연수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고 교원 양성기관은 인성교육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필수 과목을 개설해야 한다.

인성교육진흥법을 검색해 보면 인성교육을 의무로 규정한 세계 최초의 법이라고 나오는데, 민간 자격증인 인성교육 지도사 양성 과정까지 등장하여 인성교육에 힘을 썼으나 학교폭력은 줄어들지 않았다.

 

난 이래도 아무 일이 없고, 넌 그래도 아무 일이 없으니까

<더 글로리>에서 주인공이 가해자에게 왜 그런 폭력을 저질렀느냐고 묻는다. 

가해자는 “난 이래도 아무 일이 없고, 넌 그래도 아무 일이 없으니까”라고 한다. 

아무리 학교폭력의 피해자라 하더라도 복수가 정당화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지점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가해자는 죄책감 따위는 애초부터 없었고 이후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학교폭력이 줄어들지는 않았지만, 세계 최초의 법인 인성교육진흥법을 통한 인성교육이 효력이 없지는 않은 것 같다. 사람들은 학교폭력이 나쁘고, 자녀가 학교폭력에 가담했을 경우 부모가 공직에 임명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2023년 2월 정순신 전 국가수사본부장 후보자는 2017년에 있었던 자녀의 학교폭력 사건으로, 7월에는 이동관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2011년 자녀의 학교폭력 사건으로, 10월에는 김승희 전 대통령비서실 의전 비서관이 초등학교 3학년 자녀의 학교폭력 사건으로 11월에는 김명수 전 합동참모본부 의장 후보자가 자녀의 학교폭력 문제로 사퇴하였다.

자녀를 낳아 키워보지 않더라도 자신을 돌아보면 누구라도 아이를 키우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에 속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부모의 생각대로 자라는 아이들이 있기는 할까. 그런 점에서 자녀의 문제로 부모가 어떤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면 억울할 수도 있겠다. 

 

또 다른 학교폭력 

교육부에서는 4월 12일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발표하였다. 

2026학년도 대입부터 학생부 위주 전형뿐만 아니라 수능, 논술, 실기/실적 위주 전형에 학교폭력 가해 기록을 의무적으로 반영하고 피해 학생 중심으로 보호조치를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7월 18일 서이초에서 교사가 숨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8월 31일에는 신목초에서도 교사가 스스로 삶을 마감하였다. 

교사에게 행해지는 또 다른 학교폭력이 등장한 것이다. 2023년 9월 2일 교사들의 여의도 추모 집회 현장의 사진을 보았는데, 줄 맞추어 누구 하나 흐트러짐 없이 카드섹션 하는 것 같은 모습에 당황했다. 학생의 학습권과 교사의 교육권을 위해 아동 학대법을 개정하자는 주장이 이어졌다. 2023년 9월 4일 서이초 교사의 49재는 교사들에게 마음속 ‘공교육 멈춤의 날’이 되었다. 

인류 역사에서 폭력이 멈춘 적이 없었던 것처럼 학교가 존재하는 한 학교폭력은 계속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공감과 분노는 사건이 일어났을 그때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학교폭력은 학생, 학부모, 교사들 모두 함께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하는 일임은 잊어서는 안 되겠다. 

<퀸 메이커>에서 서울시장 후보 오경숙은 이렇게 말한다.

“이유가 뭐였든 간에 친구에게 폭행을 가한 제 아이의 잘못을 덮어줄 수는 없습니다. 덮어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인의 자식일지라도, 재벌가의 핏줄일지라도 죄를 지었다면 반드시 죗값을 치르는 그런 공정한 사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글·김정희

문화평론가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르몽드디플로마티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Tagged in :

bet38 아바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