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진의 시네마 크리티크] ‘보이지 않는 몸’으로서 영화의 지속에 대하여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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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에서 이어집니다.

 

일탈적인 경험에서 일상적인 경험으로

 OTT는 다양한 측면에서 ―생산과 소비의 측면 모두에서― 영화산업의 변화를 이끌었고, 디지털 스트리밍으로 인해 우리는 더욱 편리하게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언제 어디서든 손쉽게 그리고 저렴하게1) 영화를 볼 수 있게 됨에 따라 관객들은 실제로 더욱 많은 영화를 더욱 자주 보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오늘날 영화를 보는 일은 더 이상 일탈적인 경험이 아닌 일상적인 경험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오늘날 우리는 영화를 보러 가기 위해 차려입고 외출하는 대신, 각자의 방안에서 가장 편안한 차림으로 영화를 본다. 영화는 빛과 소음이 차단된, 사방이 벽으로 가로막힌 영화관이 아니라 (도시의) 조명과 (거리의) 소음에 개방된 어느 곳에서나 재생되고 있다. 동시에 영화는 관객의 선호와 저마다의 사정에 따라 언제든 자유롭게 시작되고 종료된다. 그리하여 영화 보는 일이 일상에서 벗어나는 일탈적 경험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흘러가는 일상의 일부가 됨에 따라 영화의 지속은 더 이상 보장되지 못하게 되었다. 즉, ‘보이지 않는 몸’으로서 영화의 지속이 위협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2)

 앞서 필자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때, 관객들이 영화의 시작을 기점으로 하여 ‘미래’가 ‘현재’로 전환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고 설명하였다. 이러한 전환은 (영화관에서) 영화 보는 일에 내재한 핵심적인 순간이자 관객들이 영화 보는 경험을 통해 놀라움과 새로움을 느낄 수 있었던 근본적인 지점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환의 순간은 OTT 플랫폼에서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된 듯하다. 우리는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한 상태로 단 한 편의 영화를 선택하는 대신, 그저 가능한 수많은 선택지 사이에서 볼만한 영화들을 고르곤 한다. 그러다 제풀에 지쳐 영화 보기를 포기하거나, 다른 이들에게 선택을 위탁하곤 한다.3) 앞서 언급한 농담을 떠올려 보라. OTT가 우리에게 비교적 제약 없는(또는 덜한) 상태에서 자유로운 선택을 가능하게 해주었음에도, 우리는 수많은 선택지 사이에서 종종 길을 잃고 헤매는 것 같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영화 보는 일을 더욱 쉽게 (그리고 저렴하게) 경험할 수 있게 되었음에도, 왜 실제로 하나의 영화를 보(아내)는 일은 더욱 어렵게 된 것일까?

 우리는 영화 보는 경험이 근본적으로 달라졌음을 살펴봄으로써 이에 대하여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경험과 OTT 플랫폼에서 영화를 보는 경험은 분명히 다르다. 앞서 지적했듯이, 영화가 시작하기만을 기다리는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한 찰나의 순간이 부재하다는 사실에 더하여, 또 하나의 근본적인 차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는 영화의 시작을 기점으로 하여 ‘미래’를 ‘현재’로 전환하는 과정에 있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경험이 미래가 현재로 전환되는 경험이라는 앞선 논의를 토대로 하여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관에서 관객은 미래가 나에게 다가와 현재가 되는 전환을 경험한다. 관객은 움직이지 않으며, 영화관에서 움직이는 유일한 것은 스크린의 이미지, 즉 영화뿐이다. 그러나 미래가 현재로 전환되는 경험은 그것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방법 외에도, 우리가 그것에 다다르는 방법이 있다. 즉, 관객이 미래에 다가감으로써 그것을 자신의 현재로 구성하는 것으로, 이러한 경험은 OTT 플랫폼에서 영화를 직접 고르고, 선택하며, 재생하는 관객의 경험과 닮아있다. 따라서 이러한 서로 다른 두 가지 전환을 각각 영화관에서 관객의 경험과 OTT 플랫폼에서 구독자의 경험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방법은 근본적인 지점에서 차이를 갖는다. 미래가 ‘에게’ 다가와 현재가 됨(현재에 펼쳐짐)을 경험한 영화관 관객은, 상영관을 나온 뒤에 그것과 자신의 시간을 분리할 수 있으며 실제로 분리한다. 이동한 것은(전환된 것은) 미래이고(is) 미래였던(was) 영화이지, 관객이 아니다. 관객이 미래인 영화를 자신의 현재로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영화관이라는 절대적인 존재가 관객의 시간을 영화의 지속에 일대일로 대응시켰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따라서 그러한 제약 조건을 벗어나자마자, 즉 상영관을 나오자마자 관객의 시간은 영화의 시간과 서로 다르게 흘러간다. 관객은 더 이상 영화에 자신의 현재를 일치시키지 않는다. 간단히 말해서, (영화가 끝난 뒤, 상영관을 나온) 관객은 자신의 현재를 되찾는다. 반면에, OTT 구독자들은 ‘가’ 미래로 다가가 그것을 현재로 만드는 경험을 한다. 그들은 원하는 영화를 선택하고 재생하며, 원하는 순간에 머물렀다가 이동하기를 반복한다. 이들은 영화의 지속에 자신의 시간을 일대일로 대응시키지 않는다. 한 편의 영화를 쪼개어 보거나 ‘10초 뒤로 이동’하는 등의 방법으로 자신의 리듬에 맞추어 영화의 지속을 해체한다. 또한, 이들은 하나의 영화를 마치 배경처럼 반복해서 틀어놓기도 하는데, 이를 통해 영화의 지속을 해체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리듬을 구축한다. 그리하여 OTT 플랫폼에서 영화는 일상의 일부로 경험되고, 관객의 시간은 영화의 그것과 분리되지 못한 채로 한데 얽혀 흐른다.

 영화관 경험을 ‘미래의’ 것인 영화를 ‘미래였던’ 것으로 전환하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이는 (미래로서의) 영화가 현재시제로 경험되다가 과거시제로 경험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영화는 미래라는 자신의 속성을 잃지 않으며, 변하는 것은 오직 관객의 인식(시제)이다. 반면, OTT 경험은 ‘미래의’ 것인 영화를 ‘현재의’ 것으로 취하는 과정과 유사하다. 그렇다면 이는 시제의 전환이라기보다는 영화 그 자체의 지위가 전환되는 경험일 테다. 그런데 필자는 이미 앞선 논의를 통해 OTT 시대에 영화는 더 이상 미래로 경험되지 않게 되었다고 언급하지 않았던가? 영화가 펼쳐질 미래로 경험되던 것은 영화관의 시대에 한해서였다고 말이다. 그렇다. 엄밀히 말하면, OTT에서 관객은 영화를 ‘미래의’ 것으로 경험하기 어렵다. OTT에서 관객은 영화를 ‘펼쳐’ 것이 아니라 ‘펼쳐’ 것으로, 즉 ‘미래의’ 것이 아니라 (사실상 영화의 본질적 속성인) ‘과거의’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여전히 그것이 시간적 길이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는 OTT에서 영화가 시작하기만을 기다리는 찰나의 순간이 부재하다는 점 외에도, 그리고 OTT에서 영화의 지속에 관객이 자유롭게 개입할 수 있다는 점 외에도, OTT 플랫폼이라는 모델의 정체성과도 연관되어 있다. 즉, 우리는 OTT 시장을 선도하는 넷플릭스가 온라인 비디오 대여점을 모델로 하여 시작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림 1. 영화 ‘킴스 비디오’의 스틸컷.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2023년 개봉한 데이빗 레드몬 감독의 ‘킴스 비디오’는 실제로 1980년대 뉴욕에서 운영되었던 비디오 대여점인 ‘킴스 비디오’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림 2.
그림 2. 영화 ‘킴스 비디오’의 스틸컷.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동시대를 지각하는 수단이거나, 취향을 구축하는 방편이거나

 오늘날 새로움은 더 이상 영화의 주요한 선택 기준이 아니게 된 듯하다. 그 대신 우리는 각자의 취향에 따라 영화를 골라보게 되었다. 요즘 ‘개봉한’ 영화를 보러 가는 대신, ‘볼만한’ 영화를 추천받는 것으로 관객의 태도에서 나타난 최근의 변화를 적절히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곧 ‘새롭게’ 개봉한 영화를 ‘최초로’ 경험하는 것이었다. 당시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영화란, 공개된 지 한참 지난, 오래된 무엇이 아니라 지금 막 공개된, 따끈따끈한 신작을 의미했다. 이처럼 영화가 최초로 공개된다는 것이 영화가 극장에서 개봉한다는 것을 의미했던 과거에 영화관은 전적으로 새로운 작품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따라서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단지 하나의 영화를 보는 것일 뿐만 아니라 당대의 가장 최신의 감각을 경험하는 것이기도 했다.

 가장 최신의 경향을 제일 먼저 맛보는 곳이었던 과거의 영화관은 문자 그대로 당대의 가장 ‘힙(hip)’한 장소였던 셈이다. 반면에, 개봉한 영화는 극장에서 내린 뒤 일정 기간이 지나면 비디오 대여점으로 장소를 옮겨갔는데, 따라서 당시의 비디오 대여점은 개봉 기간이 지난 영화를 ‘위한’ 공간이었다. 또는, 극장에서 개봉하지 않는 비주류의 영화(소위 B급 영화)를 ‘위한’ 공간이기도 했다. 비디오 대여점만을 위한 영화들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라.4) 이처럼 과거에 비디오 대여점과 영화관은 서로 구분된,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지금보다 홀드백5) 기간이 길었던 과거에는 이러한 구분이 더욱 뚜렷했다. 영화가 극장에서 내리더라도 수개월은 지나야 비디오로 영화를 볼 수 있었고, 따라서 비디오 대여점에서는 최신작이라고 하더라도 언제나 뒤늦은 것이었다. 이처럼 비디오 대여점이 이미 개봉한, 기존의 영화들을 접할 수 있는 장소였다면, 그에 반해 영화관은 새롭게 개봉한 영화를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그리고 독점적인 장소였던 셈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신작만을 위한, 신작에만 특화된, 새로움을 경험하는 유일하고도 독점적인 장소는 부재하다. OTT 플랫폼은 물론이거니와 영화관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영화를 소비하는 주된 장소인 OTT 플랫폼에는 과거에 공개된 영화들과 새롭게 공개되는 영화들이 한데 섞여 있다. OTT가 비디오 대여점의 온라인 버전을 모델로 하여 시작된 것이라는 사실을 떠올려 볼 때, 이는 아마도 당연한 귀결일 테다. 특기할 만한 점은 영화관에서도 갓 개봉한 영화와 이미 오래된 영화가 점점 더 구별 없이 전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 개봉한 영화의 재개봉 열풍은, 또는 개봉되지 못한 명작의 뒤늦은 개봉 열풍은 비교적 최근 들어 관찰된 영화관의 변화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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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영화 ‘큐어’의 국내 개봉 포스터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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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영화 ‘오디션’의 국내 개봉 포스터 (사진 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또한, 영화의 홀드백 기간이 급격하게 짧아지면서 극장에 걸린 영화와 OTT가 제공하는 영화 간의, 그리고 영화관과 OTT 플랫폼이라는 장소 간의 구별이 점점 더 사라지고 있다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7) 무엇보다 오늘날 신작이 공개되는 장소는 더 이상 하나의 장소에 한정되지 않으며, 영화관과 OTT 플랫폼들을 넘나든다. 어떤 영화는 넷플릭스에서, 웨이브에서, 디즈니 플러스에서, 또는 영화관에서 최초로 공개된다. 더 이상 ‘신작들로 가득 찬’ 유일한 장소는 사라진 것이다. 따라서 영화 보는 경험은 (어디서 그것을 보든 간에) 더 이상 최신의 경향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게 되었다. 또는, 그것은 더 이상 당대적 인식을, 공통의 감각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게 되었다. 오히려 영화 보는 경험은 자신의 취향을 견고하게 쌓아 올리는 일, 즉, 저마다의 기준에 따라 과거를 발굴하여 현재를 구축하는 일에 가깝게 되었다.

 새로움이 아니라 개별 관객의 취향이 영화를 고르는 새로운 척도가 되었다는 앞서 언급한 사실은 이미 이러한 변화를 내포하고 있다. 과거에 영화를 보는 가장 흔한 장소는 영화관이었고,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일은 곧 개봉한 신작을 보는 것이었다. 반면에 오늘날 OTT 플랫폼에서 우리는 새롭게 공개된 것뿐만 아니라 과거에 개봉한 것을, 심지어 신작보다 기존 작품을 더 자주 본다. 영화를 본다는 것이 더 이상 신작을 본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다. 영화관에서 OTT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새로움을 경험하는 유일하고도 독점적인 장소가 사라지게 되었고, 그에 따라 영화를 보는 경험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게 되었다고 말이다. 그리하여 영화관에서 OTT로의 이동으로 인한 한 가지 주요한 변화는, 영화를 보는 것이 더 이상 ‘지금, 여기’의 ‘우리’를 인식하는 것이 아니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영화 보는 일은 더 이상 현재를 당대적으로 인식하는 일이 아니게 된 것이다.

 이러한 지점에서 우리는 오늘날 영화관이 위기에 처하게 된 이유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우리는 이미 과거에 TV의 보급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영화관이 한차례 위기에 봉착했던 적 있음을 알고 있다. 영화관에서 TV로의, 다시 OTT로의 이동은 단지 영화가 주도권을 관객에게 이양했다는 사실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핵심은 주도권이 이양되는 과정에서 영화가 미래의 지위를 상실하게 되었다는 점에 있다. 즉, (영화관을 떠난) 영화는 더 이상 미래(의 펼쳐짐으)로 경험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영화관이라는 특정한 조건을 벗어나게 됨에 따라 영화는 ‘과거의’ 것이라는 자신의 근본적인 속성을 위장할 수 없게 된 것이다.8) 영화가 실은 과거의 존재였음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무엇으로 경험될 수 있었던 것은 영화관이라는 조건에 의해서였으며, 이는 영화관이 관객의 시간을 영화의 지속에 고정해 두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영화관은 끊임없이 과거에서 미래로 흘러가는 관객의 현재를, 어제에서 내일로 흘러가는 관객의 오늘을 영화의 지속으로 대체한 듯한 효과를 성취할 수 있었다. 그로 인해 영화관의 관객들은 영화를 보며 일상의 흐름에서 벗어난 듯한 일탈적인 경험을 할 수 있던 것이다.

 반면에 영화가 어디에서나 재생된다면, 즉 우리가 그것이 시작되기를 고대하는 순간 없이 무의미하게 채널을 돌렸을 때 이미 그것이 송출되고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문자 그대로 ‘이미 시작된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또는,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관객이 영화의 결말로 이동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펼쳐질’ 것이 아니라 ‘펼쳐’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다시 말해, 변화한 환경 속에서 우리는 영화를 ‘미래의’ 것이 아니라 ‘과거의’ 것으로, 도래할 미래가 아니라 과거의 연장으로 인식하게 된다. 따라서 영화관에서의 경험이 ‘미래의’ 것이 ‘미래였던’ 것으로 전환되는 경험을 수반한다면, OTT의 경험은 (‘미래의’ 것이라기보다는) ‘과거의’ 것을 ‘현재의’ 것으로 발굴하는 경험을 수반한다고 할 수 있다. 또는, 과거를 바탕으로 하여 현재를 구축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는 마치 오래된 유물을 바탕으로 컬렉션을 구성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이는 박물관(museum)에 전시된 유물을 보는 것과도 다르지 않을 테다.

 

1) 시장이 형성되던 초기의 OTT 구독료는 분명 영화관의 티켓 가격에 비하여 상당한 가격 경쟁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인상된 구독료와 OTT 업체들의 범람을 고려한다면, 이는 다소 논쟁적이다.

2) 이러한 지점에서 우리는 개별 영화가 “점점 더 분절되고 분할된 형태로 등장하고 있는” 현상을 목격하게 된다. 최근의 영화들은 점점 더 “‘하나의 전체’가 아닌 ‘전체의 부분’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이를 드러내듯 “2시간에서 3시간 사이의 영화 한 편을 만들던 감독들은 OTT로 거처를 옮겨 50분 길이의 6~8부작 등으로 이루어진 시리즈물을 만들고 있다.” (p.76) 필자의 다음의 연구를 참고하라. 김윤진, 「리더필름과 엔딩 크레딧을 중심으로 한 영화의 경계 해체에 관한 고찰: 조던 필의 <놉>과 홍상수의 <소설가의 영화>를 중심으로」 『현대영화연구』 Vol. 50, 2023, pp. 55-80.

3) 온라인 게시판이나 블로그, SNS 등에서 ‘OTT 플랫폼별 추천작 목록’을 다루는 콘텐츠를 흔하게 볼 수 있다.

4) 극장 상영을 위해서 만들어진 영화가 아닌, 비디오로 만들어진 영화를 비디오 영화(video film) 또는 DTV(Direct-to-video)라고 한다. 비디오 영화는 “독립적으로 제작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영화관에서 이미 상영되었던 영화를” 저렴한 제작비를 들여서 카피하여 만들어지곤 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비디오 영화” 검색.) 한편, 1980년대 미국에서는 비디오 대여 시장의 급격한 성장과 함께 수많은 공포 영화가 DTV로 출시되기도 했는데, 특히 슬래셔 영화(slasher film)가 크게 인기를 끌었다.

5) 홀드백(hold back)이란, “한 편의 영화가 다른 수익 과정을 중심으로 이동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의미하며, 일반적으로 홀드백 기간이 짧아진다는 것은 영화관에서 개봉한 영화를 DVD나 유료 케이블 채널, OTT 등에서 빨리 볼 수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시사상식사전」 “홀드백” 검색.)

6)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1997년 작 <큐어>는 2022년 7월에,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1999년 작 <오디션>은 2023년 4월에 국내에서 처음으로 개봉했다. 이들 두 영화 모두 당시에는 국내에서 개봉되지 못하였다가 뒤늦게서야 개봉한 사례다. 한편,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2008년 작 <다크 나이트>는 2008년 8월에 국내에서 개봉한 뒤, 현재까지 총 4차례에 걸쳐 재개봉되기도 하였다(2009년 2월, 2017년 7월, 2020년 7월, 2023년 11월). (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7) 한편, 홀드백 기간의 축소가 영화산업 전반의 위축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이 제기됨에 따라, 정부는 지난해 11월에 홀드백 준수 지원을 예고하고, 12월에 홀드백 법제화에 대한 토론회를 개최한 바 있다. 이어 올해 1월 말, 정부는 지원작의 경우에는 ‘홀드백 조건을 준수해야 한다’는 의무 사항을 적용한 지원사업 공고를 발표하였다.

8) 이러한 영화의 본질적 속성은 일찍이 데이비드 린치 감독에 의해 예시된 바 있다. 시대를 앞선 그의 탁월한 통찰력이 드러난 영화 <멀홀랜드 드라이브>(2001)의 실렌시오 클럽에서의 장면이 그것으로, 여기에서는 “노 아이 반다!”를 외치는 남자에 의해, 그리고 잇따른 공연을 통해, ‘현재의’ 것인 줄로만 알았던 무엇의 ‘과거의’ 것이라는 실체가 거듭해서 폭로된다. ‘밴드는 없으며 모든 것은 녹음된 것’이라는 남자의 대사는 그야말로 영화의 위장을 (나아가 ‘복제 가능한’ 형식의 예술이 공통으로 은폐하는 바를) 예리하게 드러내고 있다.

 

 

글‧김윤진

영화평론가/미술비평가. 2023년 영평상 신인평론상을 수상하였고, 같은 해 GRAVITY EFFECT 미술비평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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