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의 도발]교육·문화독립운동가로 이제야 평가받는 인촌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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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을 차린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윤석열 정권 ‘조기종식’이란 말을 달고 산다. 총선 목표가 검찰정권 조기종식이라며 대통령 탄핵이란 단어까지 입에 올린다. “좀 더 나아가면 내란 선동”이라는 박민식 전 국가보훈부 장관 말을 굳이 전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지난 대선 패배 뒤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이해찬이 했던 말은 전하고 싶다. “5년은 금방 간다.”

2심 유죄 판결을 받고 대법원 판결만 남은 조국에겐 단임제 대통령의 남은 임기 3년 반도 너무 길 것이다. 안다. 하지만 오늘은 총선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이미 정해진 대통령 임기 5년도 어떤 이에게는 죽도록 길 수 있다는 사례로 드는 것 뿐이다. 그래서 만약, 눈 떠보니 조국(祖國)은 식민지가 됐고 언제 독립할지 기약없는 100여 년 전이었으면 어땠을지 묻고 싶은 거다.

1일 서울 중구 유관순기념관에서 열린 제105주년 3·1절 기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기념사를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우리는 민중 속에 가서 민중과 손을 잡고 끊임없는 폭력·암살·파괴·폭동으로써 강도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고… 이상적 조선을 건설할지니라.” 단재 신채호는 1923년 ‘조선혁명선언’에서 2000만 민중에게 폭력 파괴의 길로 나아갈 것을 촉구했었다.

● 단재 신채호, 교육·문화독립운동을 ‘적’으로 규정

교과서에선 단재를 독립운동가·역사가로 배웠지만 기실 그는 교육적, 문화적, 외교적으로 독립을 추구한 이들을 무조리 ‘적’으로 규정했던 혁명가였다(죽창가를 부르던 조국과 흡사한 점이 없지않다). 그러나 따져보자. 단재 자신은 1910년 중국으로 망명했지만 2000만 백성 전부가 단재처럼 나라를 떠날 순 없다. 더구나 그땐 지금의 조국처럼 3년 반만 기다리면 정권이 바뀌도록 정해진 상황도 아니었다. 언제 독립될지, 그런 날이 올지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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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알겠는데 공화주의는 추상적이고 어렵다. 모두의 이익과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공적 이익과 공동체의 안녕을 중시한다는 개념. 우리 사무실엔 ‘공선사후(公先私後)’라는 인촌 정신을 쓴 액자가 걸려 있다. 공사가 부딪힐 땐 무조건 공을 최우선으로 중시하고, 사적인 일은 나중으로 돌리는 것(하다못해 밤중에 취재와 집안일이 겹칠 때도 취재가 먼저였다). 나는 이것이 공화주의를 실천하는 가장 쉽고도 옳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인촌은 1946년 한국민주당 수석총무를 맡기도 했는데 안타깝게도 최근 횡행활보하는 민주당 ‘친명횡재-비명횡사’ 공천은 공선사후와 완전상극이다.

‘전북 고창과 전남 담양은 개항 이후 미곡시장이 확대되면서 상업적 농업을 통해 자유롭게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이었다. 조선왕조의 주변부여서 새로운 문명에 대한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적었고 시대 변화에 민감했으며 차라리 근대화와 학습을 통해 국가적 위기를 돌파하려는 열기도 충만했다. 특히 김성수는 지역 인물과 재력을 연결하는 독특한 역할을 했고, 그 이면에는 열린 자세로 뒷받침했던 부모 세대의 노력과 재력이 있었다.’ 이승렬은 저서에 적었다. 호남은 대한민국 근대화를 이끈 지도자들을 키운 땅이었다. 그랬던 호남이 100년 후 광주엔 복합 쇼핑몰 하나 없는 ‘민주당 식민지’ 처럼 되고 말았다.

김순덕 칼럼니스트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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