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월의쉼표] 내가 궁금한 것 |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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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대뜸 사주를 보러 가겠느냐고 물었다. 사주라. 이제껏 살아오면서 세 번쯤 보았으려나. 마지막으로 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까마득했다. 내가 좋다고 했더니 친구가 정색을 했다. 근데 넌 뭐가 궁금한데?

그러게. 뭐가 궁금하지. 궁금한 게 있기는 한가. 결혼 전이었다면 결혼 운이 궁금했을까. 작가가 되기 전이었다면 직업 운이, 내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며 살지 궁금했을까. 그러고 보니 예전에 사주를 보았을 때는 내가 무엇을 궁금해했는지 새삼 궁금해졌다.

10여년 전 어느 산사에 머문 적이 있다. 각오는 소설 한 편 완성하고 가겠다 하는 것이었지만 현실은 종일 방바닥에 누워 빈둥거리는 날이 많았다. 아직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전이요, 인터넷도 안 되고 텔레비전도 없는 방은 문자 그대로 멍 때리고 있기 좋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큰스님이 자꾸 나를 불러내셨다. 그래서 감자도 캐고 매실도 따고 약수도 떠 나르며 소설과는 점점 멀어지는 방향으로 절 생활에 익숙해져 가던 어느 날이었다.

큰스님도 출타하고 공양주 보살님도 주말이라고 집으로 돌아가셔서 절 전체가 휑하던 오후, 일없이 마당에 앉아 햇볕을 쬐고 있는데 등 뒤에서 갑자기 제초기 소음이 들려왔다. 그러면 그렇지, 내 옆방에 기거하는 불목하니 거사님이었다.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나는 홍반장처럼 볼 때마다 쉬지 않고 시설물을 수리하고 운전도 하고 청소도 하고 밭일도 하며 경내의 모든 일을 도맡아 하는 그분이 잔디를 깎고 있었다. 딱히 할 일도 없고 혼자 한가한 것이 죄송하기도 해서 나는 그가 지나간 자리에 남은 잡초 더미를 치웠다. 그가 문득 나를 돌아보더니 이따 밤 9시에 툇마루에서 잠깐 보자고 했다.

몰라볼 뻔했다. 늘 땀에 젖은 작업복 차림이던 그가 한복까지 갖춰입고 달빛이 교교한 툇마루에 정좌하고 있으니 영 다른 사람 같았다. 절에 들어오기 전까지 철학관을 운영했었다는 그가 그날 밤 그렇듯 예기치 않게 물어봐 준 내 생년월일, 그것이 내 인생 최초로 본 사주였다.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가 몇 번이고 이렇게 물었던 것은 기억난다. 뭐 궁금한 거 없어요?

내가 무엇을 물었을까. 혹시 가까운 미래, 그러니까 2024년 즈음의 내가 대체 어떻게 살고 있을지 그런 것은 아니었으려나.

김미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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