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에 없던 ‘새로운 자성’ 찾았다… 컴퓨터 메모리 혁신 불러올까|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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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충남대 공동 연구팀

실험 통해 ‘교자성’ 존재 밝혀

망간 텔루라이드에서 교자성의 특성을 확인하기 위해 사용된 장비 ‘분자 빔 에피택시(MBE)’. 서울대 제공

외부에 자기장이 없어도 스스로 자기적 성질을 가지는 ‘강자성’과 자성이 없는 상태를 보이는 ‘반강자성’을 동시에 갖는 ‘교자성(알터마그네티즘)’의 존재 증거가 실험을 통해 속속 입증되고 있다. 교자성이 존재한다면 기존 강자성과 반강자성으로 이뤄진 자성 이론 체계를 수정해야 하는 만큼 물리학계에서 뜨거운 화제가 되고 있다.

특히 컴퓨터 메모리 성능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단서로 여겨지는 교자성 입증에 한국 과학자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면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유럽 등 과학기술 선도국들이 교자성 연구 지원에 본격적으로 나선 가운데 국내 과학자들에 대한 선제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 데이터 처리 속도 수십 배 빠른 메모리 나올까

이수영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박사과정 연구원이 물질에서 교자성의 성질을 확인하기 위해 측정한 데이터를 확인하고 있다. 서울대 제공이수영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박사과정 연구원이 물질에서 교자성의 성질을 확인하기 위해 측정한 데이터를 확인하고 있다. 서울대 제공

25일 과학계에 따르면 김창영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와 이수영 박사과정 연구원은 강창종 충남대 교수와의 공동 연구를 통해 교자성의 존재를 보여 주는 실험 증거를 지난달 18일 국제학술지 ‘피지컬 리뷰 레터스’에 학계 최초로 제시했다.

연구팀은 초고진공(UHV)에서 단결정에 물질을 성장시키는 기술인 ‘분자 빔 에피택시(MBE)’를 이용해 망간 텔루라이드(MnTe)에서 교자성의 존재 증거를 확보했다. 이 논문은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학술지의 편집자 추천으로 게재됐다. 교자성의 존재를 실험적으로 입증한 논문은 전 세계를 통틀어 10편 내외에 그친다.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1년 반 만의 성과다. 이수영 박사과정 연구원은 “이론적으로만 보고되고 있던 교자성의 존재를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한 시도들이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실험을 통해 강력한 증거를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자성에서는 강자성과 반강자성 상태가 공존하는 특별한 자기 상태의 특성을 갖는다. 고체 속의 원자는 자전과 유사한 내부 입자 운동량인 ‘스핀’을 갖는다. 원자의 스핀은 다양한 형태로 이뤄진다. 예를 들어 강자성을 보이는 물체에서는 물질 내부의 모든 스핀이 같은 방향으로 정렬돼 강한 자기장을 만들어 낸다. 일상생활에 많이 쓰이고 있는 자석이 강자성체이다. 강자성체는 자기장을 가하면 쉽게 회전을 뒤집을 수 있어 컴퓨터 메모리의 일종인 자기저항메모리(MRAM)에 쓰이고 있다.

반강자성을 보이는 물체는 이와 달리 인접한 스핀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정렬돼 있어 물질 전체에서는 자성이 ‘0’이 된다. 특정한 온도에서 물질에 자기 분극이 생기는 자화율이 극대화된다는 특징이 있다. 강자성과 반강자성은 자석의 성질을 갖거나 갖지 않는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새롭게 발견된 교자성은 스핀 분극된 밴드, 스핀 전류 등 강자성과 유사한 성질을 일부 가지면서도 자성이 ‘0’이 되는 특성도 동시에 갖는다.

이 같은 특성을 갖는 교자성은 컴퓨터 메모리 소자의 성능을 크게 개선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기존 강자성체를 사용한 메모리 소자는 외부의 자극에 매우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자석의 성질이 없는 반강자성체는 외부 자극에 안정적이라는 강점이 있지만 자성이 없는 만큼 메모리 소자에 활용될 수 있는 형태로 변환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두 가지 모두 한계점이 존재하는 것이다. 교자성체는 강자성체와 비슷하게 강한 신호를 만들어낼 수 있으면서도 외부 자극에 안정적이다. 빠른 제어도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두 성질의 장점만을 갖춘 교자성체를 활용하면 기존 메모리의 처리 속도를 최소 수십 배 빠르게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한다.

● 교자성 연구 늘어… 미래 노벨상 가능성 주목

교자성은 기초과학에서도 중요한 주제다. 자연계에 지금까지 설명된 적이 없는 새로운 특성을 갖는 물질이 추가되기 때문이다. 물리학도들이 공부하는 고체물리 교과서가 수정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교자성 발견은 일각에서 미래 노벨상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다. 앞서 스웨덴의 물리학자 한네스 알벤과 프랑스의 물리학자 루이 네엘은 반강자성과 강자성을 처음 발견한 성과로 1970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미래 산업에서의 활용도를 고려했을 때 교자성은 과학계에서 더욱 중요한 연구 주제로 다뤄질 것이라는 게 학계의 예측이다.

과학 선도국들은 이미 교자성 연구에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독일은 2022년 약 30억 원을 투자해 교자성을 집중 연구하기 위한 연구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기초과학 분야에선 큰 투자 규모다. 지난해 미국 텍사스에서 열린 자성 분야 최대 학회 ‘자성과 자성물질(MMM)’에선 교자성에 대한 별도 세션이 2개나 구성됐다.

다만 교자성이 실제 산업계에서 활용되기 위해선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교자성의 존재가 입증된 후에는 대량 양산이 가능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물질을 찾아야 한다. 단가를 낮추기 위한 후속 연구도 필요하다. 김창영 교수는 “학계에선 앞으로 불과 약 10년 후에는 교자성을 상용화한 성과가 등장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발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 국제학계에서 한국이 연구 역량을 주도하기 위해선 과감한 지원 전략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박정연 동아사이언스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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