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부 며느리에 은장도 준 시어머니…‘열녀’는 왜 자결해야 했나 [미드나잇 이슈-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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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분 나거나, 소문 나거나…살아 있으면 ‘시한폭탄’
죽으면 ‘열녀문’ 내려, 집안에 세금·관직 등 혜택
“주변서 ‘자결’ 압력…본인도 가족 위한 선택일 것”
“현대판 열녀 여전히 존재…이야기 통한 통찰 중요”

“지아비를 여의고 목숨을 끊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그게 당연하다고 들었고 (시부모님이) 그걸 원하셨으니까요. 어떤 날은 은장도를, 또 어떤 날은 명주천이 매일 아침 올라왔지요. 허나 목숨을 쉬이 끊긴 어려웠습니다. 서방 잡아먹은 과부가 남들처럼 살아보고자 헛꿈을 꾸고 목숨을 연명했으니 죗값은 달게 받아야지요.” (MBC 드라마 ‘밤에 피는 꽃’ 중)

 

인터넷콘텐츠(OTT) 범람 시대, 시청률 18.4%라는 깜짝 기록을 세운 지상파 드라마가 있다. 지난달 종영한 MBC 드라마 ‘밤에 피는 꽃’이다. 수절과부 조여화(이하늬 분)가 밤마다 복면을 쓰고 의적으로 활동하며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이야기로 인기를 얻었다.

 

백씨 부인의 시어머니가 자결을 종용하며 하인을 통해 보낸 은장도와 명주천.  MBC드라마 ‘밤에 피는 꽃’ 캡처

주인공이 과부인 만큼 시청자들은 자연스레 조선 시대 과부의 삶을 들여다보게 되는데, 그 정도가 지금으로써는 상상도 못 할 만큼 가혹하다. 여화의 신랑은 혼례를 치르기 전 변을 당했다. 그래도 여화는 예정대로 시집을 가 곧바로 과부로 살기 시작한다. 

 

여화는 함께 살아보긴커녕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서방을 위해 산다. 하루 한 끼만 먹고, 서방의 위패를 모신 사당에 앉아 추워도 불을 제대로 때지 않은 채 종일 곡을 한다. 색도 무늬도 없는 흰색 소복만 입고, 집 밖에는 나가지 않는다. 서방을 먼저 보낸 과부가 잘 먹고 잘살면 안 되기 때문이다. 여화는 (낮에는) 이런 삶을 15년간 이어왔다.

 

드라마 ‘밤에 피는 꽃’의 한 장면.

MBC 제공

시대가 그러했기에 극 중 누구도 이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시어머니는 항시 몸가짐을 바로 하라며 압박하고, 시누이는 “너 때문에 우리 오빠가 죽었다. 너도 따라 죽었어야 한다”는 막말을 한다. 심지어는 여화 자신조차 이런 과부의 삶을 당연히 여기고 받아들인다.

 

사람들은 여화를 다음 열녀문 유력 후보라며 추켜세운다. 그런 그녀에게 열녀문 라이벌이 있었으니, 여화와 같은 처지로 수절 중인 이조판서 며느리 백씨 부인이었다. 백씨 부인은 호조판서집 머슴과 정을 통한 것이 들켜 자결을 강요당한다. 시어머니는 백씨 부인에게 은장도를 던지며 “더는 가문을 욕되게 하지 말고, 마지막까지 모두가 칭송하는 열녀로 남으라”고 말한다.

 

자결을 강요하다니 너무 심하지 않은가. 화가 나면서도 궁금해진다. 실제 조선 과부의 삶은 어떠했을지. 열녀문을 받기 위해 자결하거나, 자결을 강요했던 일이 많았는지. 인제대학교 인문문화학부 이인경 교수와 지난달 29일 전화 인터뷰를 통해 조선 시대 과부와 열녀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봤다. 고전·구비문학을 연구하는 이 교수는 박사학위 논문 ‘열녀 설화의 재해석’을 통해 남성 중심이던 기존의 열녀 연구를 뒤집어 학계의 인정을 받은 바 있다.

 

Q. 드라마 ‘밤에 피는 꽃’을 어떻게 보셨나?

 

A. 과부와 열녀에 관한 이야기를 로맨틱 코미디로 다뤘는데 상당히 참신하다고 생각했다. 이전의 미디어 작품에서는 열녀를 너무 참혹하고 어둡게 그려 우리와는 다른 사람처럼 느끼게 했다. 그러면 열녀는 더는 우리 일이 아닌 고고학적 유물이 된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과부를 숨 쉬는 인물로 그렸다. 남자를 보고 가슴이 콩닥거리고, 노비와 정분이 나기도 한다. 또 어떤 양반 부인은 어머니가 외간남자와 정을 통해 낳은 이부동복 남동생이 있다. 조선 시대 양반들이 가장 두려워했고 감추고 싶었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룬 것이 흥미로웠다.

 

Q. 조선 시대엔 남편 될 사람이 죽어도 혼인을 강행했나?

 

A. 그게 당연했다. 어릴 때 혼약을 맺었는데 신랑이 먼저 죽어도 시집은 가는 거다. 파혼이 없었다. 양반가의 혼인은 가문과 가문의 결합이지 개인의 결합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랬다. 드라마에서는 남편이 죽은 날 흰 가마를 타고 시집을 가는 극단적인 모습으로 묘사했는데, 양반가에서 한번 혼약을 맺으면 신랑이 세상을 떠나도 혼인을 치러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 것으로 보인다.

 


Q. 과부의 삶은 왜 그렇게 제한적이었나?

 

A. 조선은 유교 이념으로 세워진 사대부의 나라였다. 양반들은 유교적 가치를 매우 중시했으며 여자들은 열(烈)의 정신을 지켜야 했다. 그런 양반가에서 과부는 ‘시한폭탄’이었다. 여자인 데다, 만일 아직 젊고 매력적이라면 그것만으로 너무 위험하지 않나. 과부는 집 밖을 나가지 않고 모든 일을 아랫사람을 통했다. 과부가 노비랑 정분 나는 일이 많았던 이유는 그 때문이다. 그리고 과부가 아무 잘못을 하지 않아도 누군가 소문을 만들어낼 수 있다. ‘카더라’는 치명적이다. 가문이 몰락하는 것이다. 그렇게 될 수 있는 존재가 집 안에 있다는 것만으로 얼마나 불안하겠나. 행동을 극도로 제한할 수밖에 없었다. 과부는 이런 집안과 사회의 압력 속에서 살아가기가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Q. 그래서 과부들이 자결한 것인가?

 

A. 그런 영향이 컸을 것으로 본다. 과부가 단지 남편과 의리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리고 열녀가 됐을까. 자식도 있으면 더욱 죽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자결했던 이유는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살아 있으면 시한폭탄인 과부가 명예롭게 죽어주면 집안에 열녀문이 내리고, 불경한 소문과 소문이 날 가능성을 없앨 수 있다. 게다가 열녀문이 내리면 세금 감면 등 경제적 혜택이 있었고, 그 자식이나 가문의 누군가 관직에 등용될 수 있었다. 그러니 시댁은 물론 친정에서도 과부가 자결하기를 바라고 눈치를 줬던 것이다. 과부 입장에서는 자기 자식 앞길을 열어주고 모두에게 득이니 자결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Q. 자결을 가장한 과부 살해도 실제 있었을까?

 

A. 기록에는 없으니 알 수 없다. 실제 그런 사실이 밝혀졌으면 열녀문이 내려지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다룬 설화는 많다. 그중 하나는 ‘형수가 과부인데 누군가랑 정분이 나자 시동생이 형수를 살해하고 증거를 없애기 위해 시신과 집을 불태웠다. 그러고 형수가 자결했다고 소문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열녀문이 내렸는데 그것도 불태웠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 시동생을 찬양한다. 가문도 살리고, 열녀가 아닌 사람의 열녀문을 불태워 정의를 실현했다는 거다. 매우 남성 중심적인 시각이다.

 

Q. 꼭 자결해야만 열녀가 되나?

 

A. 성종 때 양반 가문의 여자들은 재가할 수 없는 법이 만들어졌다. 과부는 재혼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과부가 재혼하면 그 자식들이 관직에 나갈 수 없게 만든 것이다. 그러니 실질적으로 재혼할 수가 없었다. 이때까지 열녀는 단순히 재가하지 않고 수절하는 정도의 개념이었다. 그런데 조선 후기로 가면서 남편을 따라 자결하고, 외간남자에게 잡힌 손목을 자르는 식의 극단적인 행동이 미덕으로 일컬어지며 그런 사람이 열녀가 됐다.

 


Q. 왜 조선 후기에 열녀의 개념이 바뀌었나?

 

A.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분위기가 달라졌다. 외세의 침략으로 나라의 근본이 흔들릴 것을 염려해 유교적 이념을 더욱 강조하게 된 것이다. 특히 여성들이 성적으로 문란해질 것을 염려해 정절을 엄격히 강조하기 시작했다는데, 이는 여성을 희생시킨 것이다. 양반 사대부들이 나라를 잘 다스리지 못해 침략을 당했는데, 청나라에 끌려가고 왜에 짓밟힌 여성들에게 책임을 돌린 것이다. 기존 질서를 공고히 하기 위해 여성을 희생양 삼은 과정에서 극단적인 열녀의 모습이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 ‘열’의 이념을 실천할 필요가 없는 천민들에게도 열녀문을 내리고 그 가족들을 면천시켜주면서 열녀 만들기가 신분을 초월해 번져나갔다.

 

Q. 열녀전과 열녀 설화의 이야기는 어떻게 다른가.

 

A. 열녀전은 한문으로 기록돼 있다. 100% 남자 사대부들이 기록한 양반 남성 중심 사고의 기록문이다. 열녀가 남편을 위해 희생하고 ‘열’의 정신을 실천한 것을 칭송하지만, 사실은 잔인한 것이다. 그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이해 없이 열녀를 자신들의 이념의 도구로 본 것이다. 

 

열녀 설화는 다르다. 양반들의 ‘열’의식에 반발하는 내용도 담긴다. 전승하는 화자가 할머니냐, 할아버지냐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지고 평가도 달라진다. 특히 여성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한 열녀 이야기에는 그들이 자결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과 감정이 녹아있다. 다양한 시각을 담고 있는 구비설화는 그래서 가치가 있다. 

 


Q. 드라마 ‘밤에 피는 꽃’에 아쉬운 점은 없었나?

 

A. 드라마 속 과부들은 상위 0.001% 집안의 과부들로 고고한 학처럼 그려졌다. 하지만 대부분 과부의 삶은 이와 아주 달랐다. 경제적으로 곤궁했다. 조선 시대 양반 여성은 경제활동을 못했기 때문에 가장이 죽어 과부가 되면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 굶어 죽을 지경에 이르는 것이 보통이었다. 겁탈과 보쌈의 위험에 시달려야 했고, 아이들은 놀림 받고, 먹고 살기는 힘들다. 그러니 내가 죽어 아이들을 잘살게 해주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을 것이다. 사회가 그들을 살아갈 수 없게 했기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었다.

 


Q. 21세기 현대사회는 열녀를 어떻게 봐야 할까?

 

A. 지금은 열녀가 없으니 괜찮다고 생각하고 말아서는 안 된다. 열녀는 편견과 사회적 압력 속에 숨을 죽이고 살았던 사람들이다. 지금도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이혼 가정의 자녀, 미혼모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환갑이 넘어 황혼 이혼하는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면 “자식이 결혼하는 데 걸림돌이 될까 봐 참았던 것”이라고 하지 않나. 사회적 편견 때문에 자신을 숨기고 사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 있지는 않은지, 자신은 편견을 갖고 그들을 대하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 고전이든 드라마든 작품을 통해 나를 돌아보고 사회에 빗대어 볼 때 그 의미와 효용이 있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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