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육볶음 1만원, 이 가격 실화냐?…2000원으로 만드는 법 [퇴근 후 부엌]”- 헤럴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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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돈 1600원으로 만든 제육볶음 1인분. 신주희 기자.

[퇴근 후 부엌]

술에 절어 해장국을 시켜만 먹다가 어느날 집에서 소고기뭇국을 직접 끓여봤습니다. 그 맛에 반해 요리에 눈을 떴습니다. 산더미같은 설거지가 기다리고 있지만 나를 위해 한 끼 제대로 차려 먹으면 마음이 충만해집니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한 끼에 만원이 훌쩍 넘는 식대에 이왕이면 집밥을 해먹어야겠다 결심이 섰습니다. 퇴근 후 ‘집밥러’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풀었습니다.

요리와 재료에 담긴 썰도 한술 떠드립니다.

[유튜브 쿠팡플레이 ‘MZ오피스’]

[헤럴드경제=신주희 기자] 직장인들의 소울푸드인 제육 볶음이 어느새 ‘밈’처럼 굳어졌습니다. SNL코리아 ‘MZ오피스’에서는 ‘남초’ 회사에 간 직장인 주현영 씨가 남직원들이 제육 볶음으로 메뉴를 강제 통일하자 아연실색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또 다른 편에서는 새로 온 ‘마초’ 직장 상사 진서연 씨가 점심 시간에 제육 도시락을 먹으며 “다 같이 제육 먹고 파이팅하자고”라고 외칩니다. 직장인들을 대동단결하게 만든 제육볶음 분명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부담스럽지 않은 한 끼였습니다.

단돈 6000원이면 매콤한 제육 볶음과 쌈 채소까지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만 이젠 만원을 훌쩍 넘긴지 오래입니다. 돼지고기에서 가장 저렴한 앞다리살 또는 뒷다리살로 만드는데 이렇게까지 비쌀 일인가 싶습니다.

2000원 미만으로 만드는 제육볶음 레시피를 소개합니다. 내 입맛대로 양념도 조절하고 설탕 대신 알룰로스까지 넣으면 건강식으로도 봐 줄만 합니다.

▶재료는 돼지고기 뒷다리살 (또는 앞다리살) 200g, 양파 2분의 1토막, 파 약간, 고추장 1숟갈, 고춧가루 0.5 숟갈, 진간장 1숟갈, 알룰로스 2숟갈, 후추, 미림 1숟갈, 참기름

1. 고추장 1숟갈에 진간장, 미림, 알룰로스, 참기름, 물 약간을 넣고 잘 섞습니다. 고춧가루는 취향 껏 더합니다.

2. 제육볶음용 돼지고기에 후추로 밑간을 하고 양념에 넣어 잘 버무립니다.

3. 기름을 두른 팬에 고기를 올려놓고 센 불에 볶습니다.

4. 양파, 파 등 채소를 넣고 양념이 잘 배일 때까지 익힙니다.

제육볶음용 한돈뒷다리살 200g을 1600원에 판매하고 있다. 신주희 기자.

제육볶음용 고기는 앞다리살과 뒷다리살 어느 부위든 상관 없습니다. 좀 더 기름진 맛을 원한다면 앞다리살을 추천합니다. 단골 정육점에서 제육볶음용 뒷다리살 200g을 달라고 했더니 1600원에 살 수 있었습니다. 100g당 2417원이었던 삼겹살과 비교하면 거의 3분의 1 수준입니다. 앞다리살 역시 100g 당 1300원밖에 안 합니다.

국물이 넉넉한 제육볶음이 취향이라면 불을 줄이고 뭉근하게 볶으면 됩니다. 또 채소와 함께 양념에 고기를 재워 두면 국물 있는 제육볶음을 즐길 수 있습니다. 설거지가 귀찮은 자취생들은 재료를 따로 섞지 않고 프라이팬에 곧바로 고기와 양념을 투하하고 잘 섞어주면 됩니다. 저는 지난번 김밥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 당근을 넣었습니다. 냉장고 한 켠에 있던 양배추도 삶아 쌈으로 준비했습니다.

제육볶음 도시락. 신주희 기자

[음식 썰]

제육 볶음은 원래 하얗다?

제육볶음의 ‘제육’은 돼지고기를 뜻하는 ‘저육猪肉’에서 유래됐습니다. 지금이야 ‘제육’이라고 하면 빨간 양념의 제육볶음이 먼저 떠오르는데, 과거에는 돼지고기 요리를 대부분 제육이라고 했습니다. 멧돼지고기는 야저육, 집돼지고기는 가저육이라고 불렀습니다. 제육볶음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는 요리는 17세기의 문헌인 ‘음식디미방’에 처음 등장합니다. ‘가뎨육(가제육, 집돼지고기 구이)’ 레시피가 간단히 기록되어 있는데 지금의 모습과는 많이 다릅니다. 일종의 돼지고기 볶음 요리로 고추장이나 고춧가루 없이 간장 양념에 재웠다가 밀가루를 묻혀 간장 기름에 볶았다고 합니다. 오늘날의 탕수육과 육전 그 사이쯤 되는 요리가 아닐까 합니다. 사실 개화기 이전 조선시대에서는 돼지고기보다는 소고기를 즐겨 먹었습니다. 농사일을 돕는 소와 달리 돼지는 가축으로 쓸모가 거의 없었고 식량이 부족했던 시기에 잡식성인 돼지까지 키우기는 무리였죠.

또 한약과 돼지고기가 상극이라는 점과 기생충 감염도 돼지고기 섭취를 꺼리는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개화기가 지나서야 중국 등 각 문화권의 요리가 유입되면서 돼지고기는 좀 더 친숙 해졌습니다. 일제강점기 소설에서도 ‘제육’이 종종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술집은 훈훈하고 뜨뜻하였다. 추어탕을 끓이는 솥뚜껑을 열 적마다 뭉게뭉게 떠오르는 흰김 석쇠에서 뻐지짓뻐지짓 구워지는 너비아니구이며 제육이며 간이며 콩팥이며 북어며 빈대떡…이 너저분하게 늘어놓인 안주 탁자에 김첨지는 갑자기 속이 쓰려서 견딜 수 없었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1924)

소설 속에 묘사된 것처럼 그 시절 돼지고기(제육은) 너비아니 구이와 함께 선술집 단골 메뉴였나봅니다. 이 때 제육이 볶음을 말하는 것인지 삶은 고기 형태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빨간 양념을 쓰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1930년대 공식적으로 소개된 제육 요리에서도 고추장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죠.

1934년 이화여대 가사과 교수였던 방신영이 쓴 『조선요리제법朝鮮料理製法』(1934)에 따르면 제육볶음은 고기를 채 치고(채썰고) 표고버섯과 파를 채 쳐 간장이나 새우젓에 볶아 먹는 요리라고 소개돼 있습니다. 1930년대에도 제육볶음은 하얀색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빨간 양념 제육볶음은 20년 뒤에나 비로소 등장합니다. 방 교수가 쓴 ‘우리나라 음식 만드는 법’(1954년)에서 돼지고기는 얇게 저며서 납작하게 썰고, 양념은 간장에 고추장을 풀고 파와 마늘을 져 넣는다고 했죠. 고추장으로 양념한 제육볶음은 1960~1970년대에 정착된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언제부터 K-직장인은 ‘제육 쳐돌이’가 되었나

일제강점기에도 제육이 친숙한 안주로 오르내렸지만 그래도 한국인들의 최애 육류는 소고기였습니다. 1970년대에는 국민 소득이 증가하면서 육류 소비도 본격적으로 늘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소고기로 수요가 쏠리자 육우 값이 폭등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한우는 농우로 활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육류 소비를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정부는 1960~1970년대 본격적으로 소고기의 대체제로 양돈산업, 양계산업을 육성하기 시작했습니다.

무려 삼성까지 ‘돼지 키우기’에 뛰어들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호주와 뉴질랜드를 다녀온 뒤 재벌 기업에 축산업을 권유했습니다. 당시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이었던 이병철 삼성 회장은 국내 최대 규모 양돈장을 지으며 축산업에 매진했습니다. 현재 용인 에버랜드 부지는 삼성의 ‘자연농원’ 양돈장 바로 그 자리입니다. 1973년 지어질 당시 아시아에서 제일 큰 규모였죠. 척박한 땅에는 양돈장을 만들어 수목원에 퇴비를 공급하고 수익을 얻으려는 구상이었습니다. 이 회장이 개량종 씨돼지 600마리를 수입하기 위해 비행기 3대를 동원한 일화도 유명합니다.

경기도 용인 ‘자연농원’ 전경 [삼성물산]

기업과 정부가 나선 덕에 1970년대 가정에서의 돼지고기 소비가 증가했다면, 1980년대에는 외식문화가 자리잡으면서 돼지고기를 활용한 메뉴들이 서울 직장가를 중심으로 등장했습니다. 특히 제육볶음의 얇게 저민 고기는 불에 오래 구울 필요도 없이 금방 볶아내면 그만이니 바쁜 점심 시간에 제격이었습니다. 또 아침으로 먹는 국, 찌개와 달리 든든하게 고기를 한 끼 채울 수 있어 인기였죠. 제육볶음은 그때부터 오늘날까지 직장인들의 점심 메뉴 1위 자리를 지키게 된 것이죠.

〈참고 문헌〉

한국민속대백과사전

식탁 위의 한국사 (주영하)

호암자전(이병철)

joo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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