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그 유전은 내 것, 가이아나의 석유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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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을 것 없는 베네수엘라, 인구80만 약소국 위협
미국 앞마당서 막나가는 독재자 마두로
美 바이든, 정의실현 하고 싶지만 몰려올 난민이 문제

작년말 남미의 한 나라가 국민투표로 이웃 국가의 땅을 자신들의 영토로 병합하겠다고 선언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 땅에는 석유가 난다. 이곳은 유럽 식민지 시절부터 영유권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지만 오랜 기간 이웃이 실효 지배해 왔다. 비유하자면 독도에서 석유가 발견되자 일본이 국민투표를 실시해 자기네 땅이라고 선언한 셈이다. 그 나라는 최근 군대를 동원해 이웃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남미의 대표 반미 국가 베네수엘라와 신흥 산유국 가이아나의 얘기다. 베네수엘라와 수리남 사이에 자리 잡은 가이아나는 국토 면적이 남한의 두 배 정도이나, 인구가 80만명에 불과하다. 군 병력은 예비군까지 합쳐봐야 4000여명이다. 반면 베네수엘라는 인구가 2800만명에 달하며, 예비군을 합쳐 30여만명의 대군을 거느리고 있다. 2022년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감동 받은 지도자는 시진핑과 김정은만이 아니었다. 2013년부터 베네수엘라 대통령으로 재임하며 국가를 나락으로 몰고 간 독재자 니콜라스 마두로 역시 영감을 받은 게 틀림없어 보인다. 베네수엘라의 군사 행동으로 일일 60만 배럴 이상을 생산하는 가이아나 유전의 생산이 중단되면 국제 유가는 치솟을 것으로 예상된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지난 4일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쿠데타를 기념하는 행진 후 연설하고 있다.  사진=EPA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지난 4일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쿠데타를 기념하는 행진 후 연설하고 있다. 사진=EPA

베네수엘라-가이아나 군사적 긴장감 고조

베네수엘라는 작년 12월 국민투표로 합병을 결정한 뒤 에세키보 지역 주민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기 위해 인구조사를 실시하고, 자국 신분증을 배포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에세키보 지역은 가이아나의 에세퀴보 강 서쪽 지역이다. 가이아나 전체 국토의 3분의 2를 차지하며, 현재 약 12만5000명의 가이아나 시민이 거주하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이 곳에 군대를 배치하고, 국영 석유회사 PDVSA에 이 지역 석유 자원 탐사·개발 허가권을 주기로 했다. 그러자 브라질과 카리브해 무역동맹 등 인접국들이 들고 일어났다. 압력에 못 이긴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14일 이르판 알리 가이아나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열고 무력 사용을 자제하고 대화하기로 일단 합의했다.

베네수엘라는 그러나 작년 말 영국이 가이아나 해역에 군함을 파견하자, 이에 맞서 5600여명이 참여하는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등 무력 행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당시 “평화와 우리 주권에 대한 영국의 도발과 위협에 대응한 방어 성격의 합동훈련”이라고 말했다.

베네수엘라의 거짓말은 이달 미국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발표한 위성사진에서 드러났다. 사진엔 에세퀴보 지역 국경 아나코코 섬에 베네수엘라 경전차와 무장 순찰선이 배치된 모습이 담겨 있었다. 최대 300명의 병력을 수용할 수 있는 기지도 구축돼 있었다. 베네수엘라 외무부는 지난 11일 성명을 통해 분쟁 지역 해안에서 시추 작업을 계획 중인 가이아나와 엑손모빌이 국제법을 위반했으며 “지역을 불안정하게 만들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글로벌 보험사를 대표하는 로이드 시장 협회는 지난해 12월 가이아나 해역을 홍해와 동일한 위험 수준으로 지정했다.

베네수엘라 "그 유전은 내 것", 가이아나의 석유 노린다[원자재 이슈탐구]

가난했던 가이아나, 카타르 UAE 같은 석유 부국 눈앞인데

베네수엘라가 이 지역을 노리고 군사적 행동을 하는 것은 석유 때문이다. 가이아나 앞바다에서 미국 석유기업 엑손모빌은 2015년 대규모 유전을 발견,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원유를 시추했다. 산유량은 점점 늘어나 최근 엑슨모빌 컨소시엄은 가이아나 인근 해상에서 일일 60만 배럴 이상의 원유를 생산하고 있다. 추가로 유전을 개발해 2027년까지 하루 120만 배럴을 생산하는 게 목표다. 국민 일인당 석유 매장량이 4000~6200배럴로, 사우디아라비아의 1900배럴의 두 배 이상이다.

농업국가였던 가이아나는 2018년까지 1인당 국민소득이 6000달러에 불과했지만 2022년엔 1만8000달러로 급성장했다. 2022년 경제성장률은 62.3%에 달했고, 작년 성장률도 38%를 기록했다. 이 기간에 가이아나보다 빠르게 성장한 국가는 없었다. 산유량이 순조롭게 늘어난다면 2024~28년에는 연평균 20%씩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동의 UAE나 카타르, 쿠웨이트 같은 석유 부국이 멀지 않았다. 베네수엘라의 방해만 없다면.

지도=게티이미지

지도=게티이미지

국제사회, 이번엔 전쟁 막나

베네수엘라가 더이상 잃을 게 많지 않다는 점도 최근 행태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베네수엘라는 이미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 시절 자국 유전에 대한 서방 석유기업 사업권과 자산을 강제 몰수한 탓에 경제 제재를 받고 있다. 2010년대 중반 유가 하락 이후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발생해 사실상 재정 파탄 상태다. 살인율, 범죄율 등은 전 세계에서 1위를 다툰다. 베네수엘라 국민 500만~600만명이 돈을 벌기 위해 난민 신세로 외국으로 떠났다.

이런 상황에서 마두로는 오는 10월 3연임에 도전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의 경제 제재가 완화됐고, 올해 대선에서 공정 선거를 치른다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마두로는 대법원을 이용해 야당 예비선거 승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의 자격을 박탈하는 등 공정한 선거를 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인기가 바닥에 떨어진 마두로가 대선에서 확실한 승리를 위해선 국민들의 시선을 외부로 돌릴 필요도 있다.

이번에 가이아나를 침략하면 미군의 폭격을 당할 가능성이 있다. 미 공군 항공기들이 최근 가이아나 상공에서 훈련을 벌였다. 다만 조 바이든 대통령이 베네수엘라를 공격을 망설일 것으로 예상하고 도박을 할지 모른다. 확고한 대안세력 없이 마두로를 축출하거나, 베네수엘라의 주요 시설을 공습할 경우 대량 난민이 미국 국경으로 몰려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금도 베네수엘라인들이 걸어서 남부 국경으로 몰려들고 있고, 바이든 대통령은 이를 제대로 막지 못한다는 이유로 비판받으며 상당한 지지율을 잃어버렸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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